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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현판

[리리뷰 500번째] 멸망 이후의 세계

by 리름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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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현대판타지
작가 : 싱숑
화수 : 169화


책 소개글

이것은 모두가 과거로 돌아갈 때 마지막까지 회귀하지 않았던 한 사나이의 이야기다.


리뷰

'싱숑' 작가는 작품 '전지적 독자 시점'을 연재한 작가입니다.

뛰어난 필력과 매력적인 세계관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죠.

이 작가의 처녀작, 멸망 이후의 세계는 오롯이 전지적 독자 시점을 읽고 난 뒤에 들은 궁금증으로 시작하게 된 책입니다.

다 읽고 든 생각은 하나에요.

'이 작가는 철학과 출신이거나 철학을 매우 좋아하는 작가이며, 장르 소설이 아니라 인문 소설로 갔어야했다.'

처음 서장 부분 부터 작가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인류에 갑자기 나타난 탑.

그리고 탑에게 선택받은 탑을 오를 수 있는 인간들 타워 워커.

탑의 바깥 세상은 비정기적으로 일어나는 '타워 임팩트'라 불리는 재앙에 의해 피폐해지고 있었고 탑을 오르는 사람들은, 그저 그곳에 무언가 있을것이다 라는 희망을 가지고 탑을 오르지요.

그러던 어느 날, 회귀의 돌이란 것을 발견하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단 것을 알게된 후로부터 사람들은 '생의 의미'에 대해 읽어버립니다.

죽을 거 같거나, 지치고 힘들면 과거로 돌아가면 되니깐요.

회귀의 돌을 향해 모두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주인공은 끝까지 '오늘'에 남아서 타워를 오르고자 합니다.

그렇게 생긴 원정대의 이름도 그에 걸 맞게 'Carpe diem(오늘을 즐기자)' 에요.

그렇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멸망 이후의 세계가 시작됩니다.

***

읽기 전에

이 작품은 인문 소설이지, 장르 소설이 아니에요.

판타지 소설을 기대했다면, 이 작품을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이 작품이 왜 장르소설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

작품을 관통하는 첫 번째 주제, 나는 누구인가?

작품은 시작부터 자신을 무엇으로 입증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요.

자신 이외에 모두가 죽은 세계에서 주인공 '재환'은 혼자 남아요.

용도 잡고, 악마를 죽이고, 마침내 도착한 [혼돈]의 세계에서 모두는 물어요.

'너는 누구냐고'

초반 고르곤 성채에 들어가는 장면은 의미심장하기 까지해요.

검문소의 제임스와 칼튼은 주인공에게 '자신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하고, 주인공은 이를 거부하죠.

자신을 증명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을 증명한다. 라고 표현하였어요.

주인공은 이미 자신이 자신이란 것을 증명하였거든요. 그의 능력 [의심]을 통해서요.

그가 얻은 능력 [의심]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해요.

여기서 철학책을 좀 읽으신 분이라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거에요.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르네 데카르트

데카르트가 <제 1철학에 관한 성찰> 에서 제시한 논리에요.

이건 너무 단순화된 명제에요.

원래 명제는 좀 더 복잡해요.

데카르트는 '내가 나인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것이 바로 '사유(cogito)'에요.

'나는 정말로 존재하는 존재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유하는 자세, 그것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명이 된다는 얘기죠.

그가 이 명제에 도달하기 까지 모든 존재에 대해 의심을 거쳐요. 어떤 존재도 [의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요.

오직 자신을 제외하고는요.

끊임없이 의심하는 가운데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의심마저 존재할 수가 없으니깐, 그렇기에 나는 존재하는거에요.

이후 등장하는 [위대한 땅]에서 온 인물들이 '송과선'을 잘리면 죽는다에서 확인사살이 가능하죠.

송과선은 데카르트가 정신과 육체가 별개라는 '심신이원론'을 주장할 때 꺼내든 것이거든요.

의미심장한 건, 주인공 '재환'이 '미노'에게 '진짜' 정체에 대한 답변을 할 때에요.

스스로 '기억상실자'라고 답변하죠.

르네 데카르트는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기억(진실)을 찾아가는 기억상실자'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주인공의 답변은 이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도 판단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데카르트의 철학은 상당히 빈약한 편이에요.

임팩트 있는 대사로 유명하지만, 그 논리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많이 부정되었죠.

이후에 등장한 게 바로, '실존주의'에요.

유명한 인물로 '니체'와 '사르트르'가 있죠.

요즘 가장 유명한 분으로는 '알베르 카뮈'가 있겠네요.

타인은 지옥이다

장 폴 사르트르

사르트르의 이 문장에 대해 우리는 살펴봐야해요.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주체성과 자유를 가진 주체이기에, 타인 또한 자신의 실재성과 같은 절대적인 확신성을 가져요.

그렇기에, 두 존재가 마주치면 서로의 주체성은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요.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타인과 자신이 관계를 맺으면서 '나의 실존'을 망친다 생각했고, 동시에 '타인의 존재가 나의 존재에 근거를 부여해주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라고도 생각했죠.

그렇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하지만, 작가는 이 말도 나중에 주인공 '재환'이 [열매]를 부수면서 하는 말로 부정하죠.

가장 끔찍한 지옥은 자기자신이다.

생이란 스스로 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후반부, 사르트르는 [빅 브라더]로 다시 등장해요.

[빅브라더]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장 폴'은 '장 폴 사르트르'의 오마주겠죠.

후반부 주인공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되요.

100억년의 시간이 지나고도 자신의 존재는 희미해지지 않았지만 어느순간부터 [빅브라더]라는 정말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었던 무언가를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주인공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이 생기죠.

'과연 나는 존재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주인공은 수없이 많은 '옷'들, 자신을 덮고 있던 많은 타인의 시선들과 수없이 많이 분리된 자신의 자아들을 인정하고, 극복함으로서 자신을 되찾죠.

이 이야기는 좀 이따가 '니체'의 이야기에서 다시 할게요.

그 외에, 작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철학으로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 가 있어요.

구조주의란 '어떤 것을 판별할 대, 전체적인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음... 일종의 흐름이에요.

단순히 학문이라고 하기는 되게 애매하죠.

후기구조주의는 이와 정 반대인거에요.

'그런 거 없다!' 하는거죠.

본인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유명하신 분이 바로 '미셀 푸코'지요.

후반부, [빅 브라더]는 '재배'하는 탑을, 그 시스템을 [파놉티콘] 이라고 불러요.

파놉티콘이란 뭘까요?

원래는 공리주의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에요.

동그랗게 교도소를 만들고, 정 중앙에 감시자를 배치한 교도소죠.

여기서 핵심은, 감시자들은 잘 안 보이게끔 어둡게 해놔요.

이렇기에 피감시자들, 죄수들은 감시자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아닌지에 대해 확인할 수 조차 없지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주인공은 수없이 많은 '옷'들, 자신을 덮고 있던 많은 타인의 시선들과 수없이 많이 분리된 자신의 자아들을 인정하고, 극복함으로서 자신을 되찾죠.

이 이야기는 좀 이따가 '니체'의 이야기에서 다시 할게요.

그 외에, 작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철학으로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 가 있어요.

구조주의란 '어떤 것을 판별할 대, 전체적인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음... 일종의 흐름이에요.

단순히 학문이라고 하기는 되게 애매하죠.

후기구조주의는 이와 정 반대인거에요.

'그런 거 없다!' 하는거죠.

본인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유명하신 분이 바로 '미셀 푸코'지요.

후반부, [빅 브라더]는 '재배'하는 탑을, 그 시스템을 [파놉티콘] 이라고 불러요.

파놉티콘이란 뭘까요?

원래는 공리주의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에요.

동그랗게 교도소를 만들고, 정 중앙에 감시자를 배치한 교도소죠.

여기서 핵심은, 감시자들은 잘 안 보이게끔 어둡게 해놔요.

이렇기에 피감시자들, 죄수들은 감시자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아닌지에 대해 확인할 수 조차 없지만 있을지도 모르는 감시자의 존재에 의해 두려워하게되요.

결국 스스로가 통제하게 되죠.

이런 개념적인 의미에서 파놉티콘은 '미셀 푸코'가 주장한 요소에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빅 브라더]의 존재를 두려워하던 마이아드가 생각나는 대목이네요.

글을 쓰는 도중에도 참 작가의 지식이 어마어마하단 생각이 드네요.

작품을 관통하는 두 번째 주제, 시뮬라크르

시뮬라크르(Simulacre)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가 주장한 '시뮬라시옹' 이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과거 여러 철학자, 플라톤, 니체, 푸코 의 주장에서 시작되어 현대 철학을 관통하는 주제기도 하지요.

시뮬라크르란 무엇일까요?

장 보드리야르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라는 시뮬라시옹 이론을 이야기한 뒤, 더 이상 모사할 실재가 없어지게 되면서 실제보다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가 생산된다 라고 이야기했어요.

쉽게 예시를 들어볼까요?

미키마우스는 '쥐'라는 동물에서 파생된 존재에요.

쥐(원본) -> 미키마우스(복제) 인것이죠.

근데 미키마우스가 실제 쥐와 비슷한 점이 있나요?

미키마우스는 어느 순간, 미키마우스(원본, 오리지널)이 된것이죠.

이런 시뮬라크르에 대해 다룬 영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매트릭스'와 '트루먼 쇼' 입니다.

매트릭스는 두 가지 세계로 나뉩니다.

인간을 배터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매트릭스의 세계와 네오가 앤더슨으로 살고 있던 가상세계.

앤더슨은 기계들이 만든 가상 세계가 진실이라 믿었습니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세계, 시뮬라크르죠.

트루먼 쇼도 그래요.

주인공 트루먼은 자신이 남들과 같은 인생을 산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죠.

그의 인생은 TV 쇼였어요.

그의 인생 또한,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모방된 세계, 시뮬라크르입니다.

이게 왜 문제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가치의 역전이 일어나니깐요.

대표적인 시뮬라크르는 바로 '화폐'에요.

화폐가 과연 진짜 가치가 있나요?

화폐가 당신의 목을 축이게 하고, 화폐를 씹으면 배가 부르나요?

아니에요.

화폐는 가짜에요.

화폐의 본질은 그냥 '종이'에요.

근데 어느 순간 화폐를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죠.

가치의 역전이 일어난거죠.

오늘 날의 사회에서 언젠가부터 가상물이 현실보다 더 가치 있는 듯 떠받들어지는 상황, 그렇기에 사람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 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와요.

이 순간이 바로 가치의 역전인거에요.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이해하셨다면 이제 작품 내의 세계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해요.

시뮬라크르를 의심한 건 처음 '거장 - 뮬라크' 때문이였어요.

다른 거장의 이름은, 멜빌(모비딕의 저자), 스칼지(노인의 전쟁 저자), 호르허(아마 알레프의 저자인거 같아요) 였는데 뮬라크의 양녀, 시르엔이 등장하면서 확신이 되었어요.

시르엔의 '시, 르'와 '뮬라크'를 합치면 '시뮬라크르'가 되죠. 아나그램이였어요.

그 후 작품은 계속 시뮬라크르에 대해 작 중에 등장시켜요.

작품 주인공이 처음 도착하는 [혼돈]의 세계는 시뮬라크르 그 자체에요.

[혼돈]의 세계는 먹지 않아도 되고, 마시지 않아도 되는 세계지만 주점이 존재해요.

왜일까요? 자신을 잃어버리는 게 두려우니깐요.

[혼돈]의 세계에 떨어진 사람들은 [위대한 땅]에서 죽은, 영혼 밖에 남지 않은 존재들이에요.

정신 오염으로 인해 망자가 되지 않는 이상, 다른 영혼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아주 긴 시간을 살죠.

긴 시간 살아온 그들에게 어느새 자신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희미해져요.

그렇기에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자아를 확립하고자 하죠.

그 행위가 바로 먹고 마시는, 자신이 살아있던 세계와 똑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에요.

훌륭한 시뮬라크르죠.

이 사진은 작 중 사명훈이 라이카와 얘기한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작품이에요.

르네 마그리트님의 작품이죠.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는 이 작품을 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할까요?

'그렇다면 진짜는 무엇인가? 우리는 파이프가 어떻게 해야 존재한다라고 판단할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요.

'진짜 같은 가짜'지만 저 그림의 가치는 아마 일반적인 '파이프'보다 가치가 높겠죠.

왜일까요?

예술적 가치가 부여되었으니깐요.

이 또한 훌륭한 시뮬라크르의 예시가 되요.

시뮬라크르는 후반부에 다시 등장해요.

최초 주인공은 탑이 생긴 세계관에서 탑을 올라, 혼돈의 세계에 도착하고, 심연을 넘어, 최초의 악몽으로 회귀해요.

최초의 악몽은 다시 주인공이 있던 '현실'이죠.

즉, [현실] -> [혼돈] -> [심연] -> [현실(최초의악몽)] 의 순환구도가 되어버리죠.

뭐가 복제고, 뭐가 원본이죠?

최초에 자신이 원본이라 생각한 세계가, 정말 원본인가요?

주인공은 최초의 악몽에 돌아오고 끊임없이 자신이 있는 세계를 부정해요.

'이 곳은 가짜다. 시뮬라크르다' 하지만, 사실은 어떨까요?

모두가 진짜였어요.

시뮬라크르를 탈피하여, 모든 게 원본이라 알게 되는 순간 이 작품은 끝이나요.

작품을 관통하는 세번째 주제는 '니체'입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저는 작중에 깔려있는 '니체'의 그림자를 너무 많이 느꼈어요.

작품 초반부, [혼돈]의 세계에 나타나 다른 인물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떠올리게 했어요.

각성자란 이름의 [초인] 이란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주인공은 니체가 얘기한 자기긍정(자신을 확인하고, 인정하여, 극복하는 것)을 통해 '각성자'가 되었어요.

또한, 자기긍정을 방해하는 노예도덕은 때려부수죠.

대표적인게 바로 [혼돈]의 성채를 부수는 이야기인거 같아요.

니체의 '초인'에 대해 잠시 얘기해볼까요?

초인이라고 했지만 원래 의미는 '뛰어넘은 자' 라는 의미가 더 강해요.

기존에 자신이 믿던 진리, 이념, 주의가 지닌 논리에 한계가 있기에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이행하고, 그렇기에 모든 주의에서 자유로운 자. 이게 바로 니체가 얘기하는 '초인'의 개념이에요.

반대로 어떤 주의에 안주하고, 스스로 진리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면, 그들은 노예인것이죠.

또한, 작품의 끝에 현실에서 시작하여, <환상수>의 가지에 올라간 주인공이 도착한 <최초의 악몽>, 또 다른 현실에서 다시 또 <환상수>로 돌아갈 이 이야기는 작 중 계속 나왔던 '우로보로스', 회귀의 개념을 띄고 있어요.

이 대목에서, 니체의 '영원회귀'가 또 다시 떠오르더군요.

영원회귀는 '모든 것이 변화하고, 또 그것이 영원히 반복된다' 라는 이야기에요.

모든 것이 변하고, 계속 반복되면, 도대체 이 삶은 왜 살까요?

그런 모든 것들 마저 긍정하고, 매순간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자기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면서, 매순간을 사랑하는 모든 순간이 의미있게 되기 위해, 영원회귀를 바랄만큼 삶을 사랑하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자세.

이게 바로 '영원회귀' 개념이에요.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 허무주의에서 삶을 사랑하는, 영원회귀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초인'인것이죠.

주인공은 처음 <최초의 악몽>으로 돌아왔을 때, 현실 세계를 끊임없이 부정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다시 살아가기 시작해요.

'뮬라크'와의 대결에서 수많은 자아를 모두 '자기 긍정' 하며, 스스로가 초인임을 보여주죠.

결국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실존주의에 대한 얘기로 가득차있는 작품이 되어버렸네요.

***

이 작품은 정말 어... 특이한 작품이에요.

인문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사색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에요.

실존주의 사상에 대해서 판타지 세계에 대입하여 펼쳐놓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걸 '장르소설'로 읽고자 한다면, 어.. 저는 1점 주고 싶어요.

이해가 안 가거든요.

대부분 중반을 못 넘기고 포기할거에요.

끝까지 읽으신 분은 근성입니다 진짜.

박수쳐주세요.

이 작품을 읽고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네요.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이 작품은 은근히, 어떤 때는 노골적으로 '철학'의 요소를 함유하고 있음을 내비쳤어요.

아는 이에게는 즐거울 수 있지만, 모르는 이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소설이죠.

또, 작가의 지식이 어마어마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도중도중 나온 에포케(epoche)나 아토포스(atopos) 같은 단어들을 보면, 작가의 지식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란 걸 알 수 있었어요.

리뷰 쓰는 내내, 오랜만에 철학책들을 다시 찾아봤네요.

이런 게 '처녀작'이라고 하니, 작가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네요.

마지막에 시르엔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리고 제목인 '우로보로스'는 작품이 가장 큰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엔딩이였다 생각해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작가, '싱숑'의 '멸망 이후의 세계'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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