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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우리나라 신파와 서양 신파의 차이점

by 리름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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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지인과 술을 마시다가 우리나라 신파가 외국에서 먹히는 현상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내용을 잊어버리기 전에 간략히 요약해 볼까 합니다.

외국인들이 계속 언급하는 부분은 이겁니다.

"한국은 감정선을 세심하게 다룬다"

즉, 감정의 빌드업이 자연스럽다는 거죠.

왜 이 인물이 이런 감정선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유를 충분히 보여줍니다.

최근에 올라왔던 짤방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외국 드라마는 ep1에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섹스를 하는데,

한국 드라마는 ep10정도 돼야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마음을 확인하고,

관객들은 그걸 흐믓하게 본다는 거였죠.

분명 할리우드도 액션 또는 스토리와 연결되어 감정선을 잘 다루던 때가 있었습니다.

20여년전 영화인 다이하드, 글레디에이터, 터미네이터 2, 더 락, 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보면 액션과 감정을 다루는 시나리오가 기가 막혔습니다.

전혀 이질감이 없이 주인공에게 공감이 되며 스토리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죠.

하지만, 지금의 헐리우드는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간단한 감정선만 사용합니다.

그걸 처음 느낀 게 영화 테이큰이었는데, 납치된 딸이 찾는다 라는 하나의 감정선으로 이야기를 쭉 끌고 나가지요.

여기까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계보가 쭉 이어져 존윅까지 오면, 그냥 하나의 장치로 활용됩니다.

끝내주는 액션을 보여주고 싶다.

그럼 분노할 이유를 만들자, 이유가 생기면 고민할 필요 없다.

그냥 달리면 된다.

이런 감성으로 만든 영화는 비쥬얼과 액션이 좋으면 나름대로 장르적 쾌감이 있습니다만, 문제는 이런 방식이 계속 누적되다 보니 점점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빈약해 지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마블 영화 인피니티 사가가 큰 히트를 쳤는데, 거기에는 마블 인물들의 개인사를 영화로 다루면서 거대한 감정선이 형성되어 타노스와의 최후에 빵! 터트린 것도 큰 매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 인물들의 감정과 긴장, 그 고조됨이 이해되면서 관객들이 "어벤저스 어셈블"에서 전율을 느끼는 것이죠.

이정도만 되면 관객으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헐리우드 영화는 그렇지 못합니다.

할리우드가 대작위주의 보여주기 식 연출로 나아갈 때, 자본의 한계로 인해 감정에 집중한 우리나라는 우리에겐 이미 질렸지만, 해외에겐 신선해 보이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죠.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이유, 연인을 지키기 위한 이유, 이런 분노를 하는 이유, 이런 스토리로 가야하는 이유.

이러한 빌드업에 충실하면서 그 안에서 점차 변화를 겪는 인물을 설득력있게 보여줍니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매트릭스를 생각해 봅시다.

원래의 스토리는 네오가 모피어스에게 빨간약을 먹고 현실로 깨어나 메시아로서의 자신을 믿지 못해 방황하다가 결국 모피어스를 구하면서 각성해 메시야가 되는 스토리지만, 우리나라에서 매트릭스가 나왔다면, 네오가 현실로 깨어난 뒤 제일 먼저 하는 걱정은 자신의 가족일 것입니다.

메시아로서 확신을 못한 채, 가족을 구하려고 다시 매트릭스에 침투했다가 가족의 위기 때문에 메시아로 각성하는 스토리가 되겠지요.

그리고 갑작스럽게 네오를 좋아한다고 뜬금없이 고백하고 네오가 맺어지는 트리니티가 아니라, 매트릭스 내에서 심리적인 아픔을 가지게 된 트리니티가 네오와 같은 아픔을 공유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가 들어갈 것입니다.

만약 우리나라 영화 "달콤한 인생"을 할리우드에서 만들었다면 존윅같은 영화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감정선의 차이가 헐리우드가 잃어버린 기술이고 아직 우리는 가지고 있지요.

그렇기에 영화 "아저씨"와 "테이큰"은 비슷한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테이큰은 딸을 찾기 위한 전직 특수부대원의 멋지고 무자비한 액션밖에 기억에 안남지만, 아저씨는 아내의 죽음으로 마음을 닫은 전직 특수부대원이 소녀를 구하며 마음을 구원받는 이야기로 기억되는 것이지요.

같은 좀비 영화를 만들어도 부산행은 분명 해외의 좀비 영화와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좀비 영화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악함과 비겁함을 다루지만, 부산행은 악한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함이 있다 라는 메시지도 분명 전하고 있지요.

이러한 사람에 대한 세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도 크게 어필이 된다 생각됩니다.

근래에 큰 히트를 친 오징어 게임을 봐도 이러한 면을 알 수 있는데, 일본에서 지난 20년동안 히트를 친 데스게임류의 영화보다 오징어 게임이 히트 친 이유는 등장인물에 대한 몰입도에 차이이죠.

일본 데스게임은 인물이 기계적으로 인간미 없이 게임을 이겨나가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각 캐릭터의 이야기들이 거의 빈약하지요) 오징어 게임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인물들의 성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게다가 평면적으로 무조건 나쁜놈 착한놈으로 갈라놓는 것이 아닌 때로는 호의를 보이고 때로는 비겁해지는 인물들의 모습이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것이죠.

이런 작은 차이가 외국인들에게는 다른 느낌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분명 예전엔 할리우드 영화의 대단한 시나리오와 발상, 자본력에 입을 벌리며 영화를 봤었는데, 이렇게 세상이 바뀌다니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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