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판타지
작가 : RUT
화수 : 325화
책 소개글
검술명가의 둔재차남 알렌. 무리한 검술훈련 중 의식불명에 빠진다.
가족의 걱정 속에 1년 동안 이어진 식물인간 상태.
기적적으로 깨어난 알렌이 처음 뱉은 말이란?
"밀리애니 제작확정 실화냐?"
덕력 10년차의 오타쿠가 되어 돌아온 검술명가 차남의 얘기가 지금 시작된다.
리뷰
언제나 후기를 쓰다보면 길어지기도 하고 저도 기억이 흐릿해지고 의욕도 떨어지기에, 오늘은 아예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정말 천재라서 고민 1도 안하고 글을 써 갈겨서 본인의 경험을 적어낸 수필이 아니라면야 아무튼 대단해! 만 반복하는 이세계물의 +-가 미묘한 양산형(?) 정도가 되겠네요.
물론 원래 작가가 썼을 글을 자기가 썼다며 내밀어놓고는 다른 놈이 뭐라하면 눈 뒤집혀서는 뭐라 뭐라 한다거나, 자기가 선구자인데 베껴간다고 소송 걸고 난리 피우는 뻔뻔한 철면피 같은 글은 아니기에, 그런 점은 보기 좋습니다.
종종 이런 문화나 예술계, 하다못해 스포츠건 음악이건 뭐가 됬건 자기는 환생이다 회귀다 전생이다 해서는 스테이터스며 스킬이며 치트키를 끌어다 써놓고는 노력이니 열정이니 읊어대며 남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쓰레기 작품들도 있으니까요.
우선, 뭐, 개념의 도입이라는게 참 우스워보이면서도 대단한 거라는 걸 생각해보면 음악이며 만화며 게임이며 온갖 분야의 예술과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내는 와! 대단해! 같은 느낌이 반복되는 글이라도 무조건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는 건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제가 까고 싶은 부분은, 그리고 아마 이 소설을 보셨거나 보실 분들이라면 대부분 느끼고, 거기서부터 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상당히 갈릴 부분이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다른 소설에서 종종 걸리는 개연성의 문제가 일어날 부분에서는 의외로 괜찮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만은, 도리어 이런 전개 방식이나 소재를 지닌 소설, 그리고 사실상 질이 떨어지거나 사이다 전개만을 노리는 소설에서 이따금 나오는 개연성의 문제에 걸렸습니다.
꽤나 독특한 시작입니다만은, 검술명가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몸 쓰는데 재능이 없어서 검술 천재 형과 마술 천재 여동생 사이에서 고민한다...라는 흔한 시작인 줄 알았더니 식물인간이 됐었던 기간의 10배 정도를 웬 사내놈의 배후령으로 지내다가 돌아오고 나서 글은 시작됩니다.
가족 관계도 화목하고 주변에서도 응원은 해주는데 스스로도 마법이건 검이건 재능이 없어서 한숨만 푹푹 쉬는데 이게 웬 걸, 유행하는 소설 꼬라지가 참 별로인 게 아무튼 구립니다.
지구산 막장 드라마며 고전 명작이며 하여간 수천년 인류가 추구해온 즐거움의 정수를 10년간 맛보다 온 주인공으로서는 어이가 없어서 뭐라 했다가 팬이었던 빡친 여동생과의 내기로 글을 써보게 되고, 근데 그게 재밌어서 유행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 타게 되고 그렇게 시작되는 아아 이것이 지구의 뒤틀린 염색체 맛이라는 것이다...라는 전개입니다... 만은...
예, 뭐. 태어나자마자 난 글을 쓰겠어! 도 아니고 중세의 소설이라고 해야 뭐, 심청이가 인당수 뛰어들고 기사가 용을 잡았다고 광대가 이리저리 뛰며 입으로 말해대고 하는 수준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리치왕이 서리한이 굶주렸다고 말하던 시네마틱을 보고 반지의 제왕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잼이라고 했을 테니 이해는 갑니다.
이해는 가는데...
미래를 고민하다가 가족의 반응과 지원으로 글을 쓰게 됐다는, 그리고 즐길게 너무 적어서 문화를 진흥시키면 좀 더 낫겠지 싶다는 적어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글을 왜 쓰게 됐고 왜 거기에 주력하는가에 대한 대답.
무작정 글이다, 소설이 다거나 단순히 명작을 그대로 복사해온다는 미친 기억력 설정도 없는데 그런 짓을 해내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어떤 장르, 명작이나 유명한 서술 트릭의 전개 방식 같은 걸 도용해서 쓰는(그 정도는 기억할 만하죠) 똥에서 음식물로 돌아올 수준의 개연성의 회복.
국가에서 단순 취향이나 유행뿐만이 아니라, 강국인 제국이 왕국을 매번 무시하다가 때마침 유행을 타게 된 주인공의 글과 예술이 유명세를 얻자 체면이 구겨지고 그 기회에 왕국이 사절단에 대한 대접이라던가 예술 산업이라던가 등 주인공 코인을 타서 떡상해가며 지원해주는 이유, 그리고 종종 나올 그래서 어떻게 협력했어? 귀족이라고 이게 다 되나? 싶은 부분에 대해 왕의 전폭적인 협력이라는 대답.
이것까지는 그래도 썩 괜찮은데...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언제나처럼 짚을 문제는 단 하나입니다.
반대로, 이 모든 과정이 성립하려면 주인공의 글솜씨에 대한 개연성이 걸립니다.
사람들이 반하고 눈물 흘리는 글.
예, 가능합니다.
가상의 주인공을 따라하고 환호하고 장소를 찾아다니는 팬들.
예, 가능합니다.
나라간의 경쟁에서 문화가 지니는 지분과 힘, 문화 산업의 경쟁력.
예, 가능합니다.
글을 잘 쓴다면요.
음악을 잘한다면요.
그림을 잘 그린다면요.
주인공은 어떻게 하죠?
음악, 오페라나 어떤 흥얼거림 같은 특정한 개념의 소개나 가락을 알려주는 것, 연극에 새로운 문물을 도입하는 것 등은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전문가들을 동원했으니 가능합니다.
그림도 마찬가지로 대략적인 설명을 말로 하고 글로 묘사해 전문가들이 그걸 보고 떠올려 주인공에게 검증을 받고 대조해간다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글은 아닙니다.
양산형마저 쓰기는 힘들고, 고전적이거나 흔해빠진 글마저 쓰다보면 어느 순간 길이 막히고, 어렵고, 힘듭니다.
그것을 단순히 내가 지구의 영화, 지구의 글, 지구의 문화를 겪어봤다는 한마디로 가능할까요?
조커 영화에서 조커가 어떻게 행동했다.
어떤 장면에서 이렇게 움직였다 이런 걸 영화를 봐서 아 그때 그랬지 싶은 정도의 기억으로, 뭘 해요? 장난합니까?
고작 그 따위 기억으로, 참신한 소재 정도의 평가도 아니고 난생처음 써본 글들이 호평이다 못해 찬사를 받고 계속해서 와 대단해! 전개가 이어진다고요.
예, 물론 처음부터 이세계의 예술의 퀄리티가 뒤떨어지긴 하고, 또 중세 자체의 글이 지금 보면 재미없을 거란 건 맞습니다.
지금의 양산형마저 과거로 보낸다면 하나의 전설이건 뭐가 돼 건 될 수는 있겠죠.
도용의 문제가 걸릴 게 없다는 허용이 있으니 어느 정도의 선까지는 주인공이 와 대단해라는 말을 들어도 그럭저럭 가능합니다.
게임이건 음악이건 글이건 이러니저러니 해도 개념의 도입과 그런 개념들이 도입돼서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 겪어낸 사람이 쓰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는 분명 크니까요.
근데 이건 선을 넘었지.
우리가 셜록홈즈가 추리한다라는 것 하나를 안다고 셜록홈즈 같은 글을 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조커와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안다고 사람들이 찬사 하도록 위대한 글을 연이어 밤을 새워 며칠, 몇 주 만에 완성해낼 수 있습니까?
로미오와 줄리엣, 맥베스 같은 지금보면 고전적이기만 한 글마저 그 필력과 이어지는 휘갈김은 오롯이 작가의 것이고 노력과 재능의 산물인데, 소재를 안다는 하나만으로 그에 맞먹는 글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낼 수 있습니까?
단순한 개념의 도입, 전문가를 통한 대리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무슨 일만 생기면 잘됬네, 하면서 새로운 소재,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가며 글을 단박에 써내고 이게 찬사를 받으며 매번 엄청나게 잘 돼가고 적은 반향을 받으며 매번 대박의 대박만을 친다는 건 엄밀히 말해 그냥 먼치킨물입니다.
회귀재벌물에서 아무튼 떡상하는 거랑 무슨 차입니까.
사이다를 좋아하시거나 다양한 문화가 나오는 장면, 이런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넘어가실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킬링타임, 또는 독특하네 이 이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학 자소서, 논술, 가벼운 에세이부터 자서전까지 이것 하나를 쓰는데 학원이며 교수며 몇 년 몇 개월을 배우고도 결과물은 뒤떨어지는 일이 많죠.
그런데 소재를 안다고 그걸 단박에 짜임새 있게 연결해 명작들을 연거푸 만들어 낸다... 심지어 지구상의 소재와 여기에는 없는 문물들, 유머 코드, 유명한 명장면, 캐릭터성, 문제가 될 만한 파트를 일일이 검수하고 생각하고 걸러내며 아무런 비판도 없게 문제점을 지워내 가면서 그런 짓을 한다고요?
총평
사이다나 재벌물 회귀물 이런 것 중 양산형? 뭐 그런 것도 좋아하시거나, 너무 세밀히 개연성을 안 따진다 이런 성격이시면 보실만은 한 작품.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름 다양하게 소재를? 썼고 해서 볼만은 한데 저 미친 글쓰기에 대해서 계속 걸려서 그렇지 흔한 양산형 막 쓰기보다는 괜찮고 킬링타임 정도는 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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