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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소설관련 잡담

내가 느끼는 [신비의 제왕] 재밌는 이유(추천 글)

by 리름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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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경고할 겸 말하지만, 한국 웹소설 트렌드랑은 안 맞는 소설입니다.

"사이다패스, 빠른 전개, 먼치킨 깽판"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은 안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개연성, 판타지 설정, 충실한 세계관 묘사, 느리지만 차근차근 성장, 모험" 이런 류를 좋아하는 사람은 잘 맞을 확률 높습니다.

1. 판타지 장르에 충실

현판, 중세판타지... 보다 보면 결국 그 소설이 그 소설인 것처럼 특별할 거 없는 소설 속 설정 내용들.

결국 일정한 범주 안에서 조금씩 변주만 가하는 소설에 질릴 사람도 많을 텐데, 이 소설은 정말 '판타지적 상상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재밌고 독특한 설정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지의 제왕 톨킨 급의 아예 세계를 창조하는 수준의 설정을 기대하면 곤란합니다.

기존의 산재했던 설정들을 많이 참조했지만, 그것들을 한데 엮어서 주인공이 차근차근 세계관을 알아가고, 그 이면에 숨겨있던 진실들을 파악해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2. 주인공 성격

주인공이 지능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은 더 빡대가리인 소설들, 주인공 자체가 발암 요소인 소설들을 싫어하는데, 여기는 주인공 성격이 계획적이고, 분석적이고, 조심하는 스타일.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임)

물론 소설임에 어쩔 수 없이 있는 주인공식 버프가 있긴 하지만, 깽판 치는 양판소 만큼 심하지는 않습니다.

3. 세계관 묘사

한국 웹소에선 빠른 전개 트렌드 때문에 세계관 묘사는커녕, 인물 묘사에도 거의 분량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게 중세 배경인지, 현대 배경인지 근본 없는 세계관도 넘쳐나고, 그렇다 보니 어떤 배경인지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신비의 제왕은 빅토리아 시대, 즉 산업혁명 초창기 배경인 소설인데 이런 세계관을 정말 잘 묘사합니다.

넘쳐나는 공장 때문에 발생하는 환경오염, 공해, 질환, 납 중독으로 사망하는 노동자, 도시에 몰려들면서 비참한 하류 노동자 인생들, 기계가 들어오면서 실직하고 일어나는 러다이트 운동.

이런 세계관 묘사가 세세할 뿐 아니라, 단순히 지식 남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런 부정적 감정들을 사건에 엮는 능력까지.

또한 많은 소설들이 '금화 1개면 4인 가족 어쩌구' 하면서 대충 화폐가치를 퉁치고, 또 조금만 지나면 주인공이 더 이상 가진 돈을 셀 필요도 없이 많은 돈을 벌어서 화폐 시스템이 있으나 마나 인데, 이 소설은 화폐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고 묘사하고, 주인공이 가진 자원과 그 자원을 어떻게 쓰는지 자세한 설명을 해줘서 좋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주인공이 반인반신(서열4)가 되고 난 후엔 돈이 의미 없긴 마찬가지지만, 상당한 화수가 지난 후입니다.

4. 클라이맥스 연출

빌드업에 상당히 공을 들이기 때문에 그런 거 못 견디는 사람은 그 기간이 되게 지루하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그런 빌드업을 통해 뿌려진 떡밥이 하나씩 밝혀지고, 또 클라이맥스에 벌어지는 전투신을 비롯한 연출이 정말 탁월한 작가입니다.

사이다패스, 빠른 전개 소설은 그런 클라이맥스라고 부를 만 한 장면도 몇 없을뿐더러, 대부분은 그냥 그저 그런 악당이 나와서 주인공한테 깝죽거리다가 금방 처맞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팅겐을 구했다" 장면은 정말 이 소설이, 작가가 한낮 조연에 불구한 등장인물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어이없는 퇴장이 아닌 존중을 보여줬다고 생각하고 베크랜드 마무리 단계에서 벌어졌던 추격씬은 정말 오래간만에 소설 보면서 영화 추격씬 보듯이 가슴이 쫄렸고.

(스포)

이공간으로 가서 시체 매달린 성당에서의 전투씬은 그 기괴하고 음산한 코즈믹 호러의 느낌을 줬고.

대장의 복수 후에 달리와 춤추는 장면은 시원함과 동시에 애잔함도 줬다.

버려진 도시에서의 마지막 전투씬도 마찬가지. 실버 시 의장이 눈 감으면서 문 저편으로 새로운 세상의 빛이 들어오는 장면은 정말...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보면서, 영화 볼 때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 작품.

5. 빌런

사이다패스 소설들의 단점 중 하나는 빌런이 너무 빌런 같지가 않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은 주인공에게 깝죽대다가 금방 참 교육당하고 뒤지기 마련. 딱히 소설을 완결까지 보고 난 후에도 기억남는 인물은 거의 없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전반부의 빌런이라고 할 인물이 펜으로 사각사각 글씨를 쓰는 장면이 나오면 '하 쓰벌 이 새끼 또 뭘 쓰려고' 하면서 정말 위기가 위기처럼 느껴지고, 또 후반부를 담당하고 있는 아담과 아몬. 특히 아몬은 제가 본 모든 웹소설 통틀어서 가장 인상적인 빌런입니다.

단순히 압도적인 무력으로 주는 위기가 아니라, 정말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정신적 압박감도 같이 주고, 또 그런 압박감을 잘 이용해 먹는 빌런입니다.

멀쩡히 잘 대화하고 있던 상대방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외알 안경을 꺼내서 눈에 낀다?

보고 있던 독자도 감정 이입돼서 심장 덜컹합니다.

[단점]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소설에도 단점은 존재하는데 우선 말했듯이 빌드업 과정이 꽤 길어서 그 부분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저도 맨 처음 초반부 볼 때는 '아니 말이 왜 이렇게 많아'라고 느꼈을 정도로 설정 설명이 많아서 좀 짜증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을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는 세세한 세계관 묘사에 푹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을 싫어하는 사람은 맞는 소설이 아닙니다.

 

"아오 여러가지 설정놀이하는 거 싫어. 난 그냥 빠르게 치고받고 싸우고 주인공 이기는 거 보고 싶어"

 

라는 분은 여러모로 안 맞을 소설.

또 한 가지는 설정과 세계관이 정말 방대하다보니, 한 번에 쭉 읽지 않고 끊어서 보면 기억하기가 어렵고 헷갈린다는 점.

이건 웹소설처럼 한 편 한 편 따라가기보다는 책처럼 쭉 읽어야 더 이해도 쉽고 몰입하기가 좋습니다.

저도 후반부에 들어선 영문 위키에서 정리된 표를 봐야 했을 정도입니다. (서열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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