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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소설관련 잡담

소설에서 왜 핍진성이 중요할까?

by 리름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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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진성이 무엇이냐?

 

'세계관 내에서의 현실성'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다른 글에서 들어준 예시로

 

 

정통 무협 소설 주인공이 검을 쓴다 = 핍진성이 있다. 충분하다.

 

정통 무협소설 주인공이 총을 쏘며, 스포츠카를 몰고 다닌다 = 핍진성이 없다, 벗어났다.

 

 

등으로 가르는 거죠.

 

많은 독자들이 핍진성과 개연성을 혼동하는데 이 이유는 간단한게 둘 다 '이게 말이 되냐?'로 귀결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헷갈리기가 쉽죠.

 

그럼 핍진성의 예시에 대해서 좀 더 파고들어가봅시다.

 

잘 만들어진 작품의 경우 보통 글을 쓸 때 필요한 삼박자를 충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삼박자란 것은

 

1) 개연성

 

2) 핍진성

 

3) 당위성

 

이 모든 것을 이루는 거예요.

 

 

예시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4 개의 종족(인간, 나가, 도깨비, 레콘) 으로 나뉘고 더운 남부지역은 나가가 다 먹은 상태고 그 위의 북부를 인간, 도깨비, 레콘이 나눠먹고 있죠.

 

 

주인공 무리는 오랜 격언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를 따라서 나가를 구하는 게 주요 스토리인데 이 작품은 핍진성을 매우 잘 지킨 작품입니다.

 

물론 나머지 두 개, 개연성과 당위성 또한 충만하죠.

 

그럼 이 작품이 왜 핍진성을 잘 지켰는가?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면.

 

 

작중에서 도깨비는 혼자서 섬 하나를 멸망시킬 정도로 강대한 종족이지만, 전투에 들어가면 전력으로 치지는 않아요.

 

그래서 보통 가장 강대한 종족을 레콘이나 나가 둘 중 하나라고 두죠.

 

이유가 뭘까요?

 

작가가 설정하기를 '모든 도깨비는 피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가 있어서입니다.

 

 

도깨비는 피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전투에서 필연적으로 피를 마주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보니깐 도깨비는 전력으로 칠 수 없다.

 

가 되는 거예요.

 

 

여기서 흥미로운 문장이 하나 끼는데

 

'전투에서 필연적으로 피를 마주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보니깐'입니다.

 

이 부분이 왜 중요하냐?

 

얘는 '현실성'이거든요.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계에서 싸움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피가 튀는 거죠.

 

이건 '현실성'.

 

근데 도깨비는 피를 무서워하기에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

 

이건 '핍진성.'

 

 

핍진성은 작가가 설정한 세계관에서만 적용되는 내용이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얻은 상식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현실성'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만으로는 이해가 안 갈 테니깐, 다른 예시를 들고 올게요.

 

여기서부터 파란 글씨는 '핍진성', 빨간 글씨는 '현실성'이다.

 

워크래프트란 게임을 아시나요?

 

이 게임의 초, 중반부 중요 내용은 오크인 '쓰랄'이 탄압받는 오크 동료를 구해서 반란을 일으켜서 새로운 세력을 구축하는 게 메인 스토리였습니다.

 

 

오크의 세계관 내 설정에 대해 알아보면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로 대변되고, '신성한 막고라(1대1 승부)'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오크는 힘과 명예를 중시하고, 타인의 지배를 거부하는 종족입니다.

하지만 전쟁에 패하고, 이세계로 넘어오면서 노예가 된 애들이 있죠.

쓰랄은 어릴 때 버려져서 인간에게 자라면서 노예 검투사가 되었어요.

무패의 검투사로 승승장구하다가 한 날, 스랄의 패배에 걸린 돈이 엄청 큰 경기에서 패배해버렸고 돈을 잃은 블랙무어란 놈이 스랄을 오지게 두들겨 패버리죠.

스랄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고, 자신의 운명은 이게 아니다 생각하며 탈출하게 되죠.

그리고 다른 오크 수용소를 돌아다니며 동료들을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다가 그롬 헬스크림과 전쟁노래 부족이라는 아직도 투쟁하는 오크들과 합세하여 오크들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세력으로 만들기로 하죠.

 

하지만 탄압받는 동료들을 구해 반란을 도모할 경우, 사회의 기득권이 좋아하지 않겠죠.

그래서 스랄이 반란을 꾀하는 도중, 스랄을 도운 반란군들은 중죄인으로 처형당하고, 반란에 성공한 스랄은 새로운 땅을 찾아 세력을 세웁니다.

 

 

여기까지 보면 어떤 감이 오시나요?

 

핍진성은 독자를 몰입시키는 도구입니다.

 

처음에는 '세계관이 이러니깐, 이건 독자들이 이해하고 따라와라'라고 작가가 던져주고 어느 정도 그 과정이 끝나면 독자들이,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현실성을 대입해서 몰입을 더 높여주죠.

 

 

즉,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는 겁니다.

 

 

이세계에 떨어진 주인공살아남기 위해 첫 살인을 경험하고 벌벌 떤다.

 

마왕과 싸워 이긴 주인공많은 사람들에게 용사라고 찬양받았다.

 

메모라이즈의 주인공 김수현은 회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아무도 죽게 하지 않기 위해 복수를 꿈꾼다.

 

 

이제 좀 알 거 같나요?

 

 

 

그래서 누군가가 '반지의 제왕'에 대해 얘기를 할 때, '현실성이 있다'라고 말하면 이건 틀린 말이에요.

 

'야, 판타지인데 현실성이 어디 있냐?'라는 태클이 걸릴 수도 있는 거죠.

 

 

근데 누군가가 '반지의 제왕은 핍진성이 진짜 대단해.'라고 말하면 '그건 ㅇㅈ' 할 수 있는 거죠.

 

세계관 내에서 현실성이 엄청났으니까요.

 

 

 

보통 핍진성은 독자를 납득시키는 또 하나의 과정이고, 작가가 얼마나 설정을 섬세하게 짰는지 판가르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보통 아포칼립스물이나 메카물이 특히 이 핍진성에 대해 엄청나게 신경 쓰죠.

 

 

이족보행로봇이 실용성이 떨어지는 걸 모두 알고 있지만, 이족보행로봇은 로망이잖아요?

 

그래서 작가들은 설정을 막 넣는 거지.

 

'인간과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사족보행이 아닌 이족보행으로 했다.'

 

'GN입자란 것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등등...

 

 

포스트 아포칼립스물도 '저런 괴물들이 버젓이 나돌아다니는 이유는 방사능 때문이다' 식으로 만드는 거죠.

 

 

 

이제 알겠나요?

 

 

이 핍진성에 초점을 맞추고 글을 읽다 보면 작가들이 글을 잘 썼다 싶은 애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러니깐 다들 글을 읽을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재미를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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