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소리 없이 맞서 싸워라!
실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공격으로 일상의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 아이들 대신 죽음을 선택한 아빠의 희생 이후 살아남은 가족들은 위험에 노출된다.
갓 태어난 막내를 포함한 아이들과 함께 소리 없는 사투를 이어가던 엄마 ‘에블린’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 집 밖을 나서지만, 텅 빈 고요함으로 가득한 바깥은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1. 공포를 다루는 법
공포/스릴러 장르임에도 점프스케어(갑툭튀)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에 있습니다.
공포영화인 <위자>(찾아볼 필요는 없다.)같은 경우 갑툭튀가 많이 등장하는데에 반해 공포영화로서의 매력은 없습니다.
공포는 악당이 예고없이 불쑥 나타나는데에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결국 맞닥드릴것을 예고하면서도 그 시기가 언제인지 모른다는데에 있습니다.
점프스케어의 남발은 관객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영화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영화에서 점프스케어는 초반에 많이 등장합니다.
지구에 어떻게 괴생명체들이 등장하게 되었는지의 설정을 설명하는 초반 회상씬입니다.
갑자기 등장해 교통사고를 일으킬뻔한 차량, 예고없이 등장해 인간을 날려버리는 크리처 등등이 점프스케어로 등장합니다.
이는 스토리 설정을 설명함과 동시에 초반에 관객에게 심리적 타격을 가하면서, 일종의 관객이 조성된 공포에 제압되도록 역할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면서는 점프스케어는 드물게 나타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순전히 '결국 예고된 크리처의 등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질문입니다.
크리처들은 들리는 소리가 있어야 인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만, 당연하게도 들리는 소리가 없다고 인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집 밖의 크리처는 집안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도 반드시 사람들이 있는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결국 플롯의 탈출구를 크리처와 반드시 마주하도록 설정해놓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과 심리적 압박을 컨텐츠로 만들어냅니다.
2. 드라마
어느 장르영화에서든 나는 '좋은 영화'란 '좋은 드라마'를 가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부하고 무거운 것일지라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끌어안고 사는 관객이라면,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자랑스러워해도 될 책임이며 영화를 통해 당연히 그 숭고함을 만끽해야 합니다.
'책임만이 의미를 지닌다.'
희생, 헌신, 노력, 성실함과 같은 가치들로 삶을 채워가는 인물, 그리고 그 여정을 그린 스토리가 드라마입니다.
작중에서 인물들은 각자의 생존을 도모하면서도 가족이라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헌신합니다.
세 아이를 보듬어야 하는 엄마는 물론이며, 청각장애인인 딸은 크리처들이 도사리는 땅을 가로질러가서 생존자들에게 도움을 주려합니다.
특히 청각장애를 가진 딸(이하 리건)은 영화속에서 인류구원을 향하며 매우 도전적이고 희생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책임감이 강한데 자신의 깜냥보다 큰 책임을 지는 인물을 관객은 더 응원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헌신적인 태도가 개연성을 갖는것은 전작에서 아빠에게 받은 사랑때문입니다.
리건의 아버지는 딸의 청각장애를 해결하기위해 보청기를 만들어내려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의 노력때문에 크리처들을 제압할 수 있도록 되었고, 이는 리건에게 내적인 의미와 크리처를 제압하는 외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추는 것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구하기 위해 죽게되고, 결국 그런 아버지의 헌신적 사랑을 그대로 이어온 딸의 의지에 개연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나 형제들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듣지 못하는 리건은 아버지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킬리언 머피 배역의 '에밋'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역시 크리처의 등장으로 가족들을 잃었습니다.
그 상처로 생존자들을 돕거나, 희망을 찾아 모험을 감수하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지만, 장애를 안고 인류구원에 나서는 리건의 책임감에 동화됩니다.
그리고 이는 영화 후반부에 리건을 돕기위해 에밋이 희생을 감수하는 개연성을 마련합니다.
3. 다채롭고 창의력있는 컨텐츠
영화가 참 깔끔하다고 느낀것이 크리처가 등장하는 영화인데, 좀비영화들처럼 떼거지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개체만 있어도 수십의 사람을 도살할 수 있고, 또 2편까지 끌어온 스토리임에도 인물들에게 늘 한결같이 무거운 긴장감을 부여하는 존재감은 대단합니다. <쥬라기 공원>에서 랩터에게 추적당하는 어린아이들을 참고한 듯, 크리처 외적인 능력의 과시보다 위축된 인물들의 감정을 통해 공포를 조성하는 방식이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크리처와 마주하는 환경속에서 구체적인 액션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액션이 다채롭습니다.
적의 침입은 차단할 수 있지만 들어가 있으면 산소가 고갈되는 장소라든지, 물줄기가 쏟아지면 소리를 듣기위해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설정들을 다채롭게 이용했습니다.
전작에서도 크리처를 피해 출산을 해야하는 상황 등 극적인 액션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는 소리로 쫓는 괴물과 인간의 1차원적인 대립구도에서 다방면의 컨텐츠를 만들어내면서, 같은 대립구도를 보는 관객의 피로감을 줄여주었습니다.
가령 좀비영화나 특히 게임같은 경우에 그런데 <라스트 오브 어스>와 같은 경우에도 일반좀비, 소리에 예민한 좀비, 맷집이 좋고 독 폭탄을 발사할 수 있는 좀비 등 크리처의 종류가 많고, 개체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것은 각각 좀비마다 개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극적인 패턴에 자주 노출된다면 즐기는 입장에선 노동일뿐이죠.
4.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이것은 스토리를 창작하는 입장에서도, 영화를 깊은 고민없이 즐기는 입장에서도 좋은 태도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왜 영화의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크리처들이 우주선을 타고온것인지, 운석을 타고온것인지, 지구를 일부러 침략한 것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잃은 에밋이 어떻게 아이들을 잃었는지, 어떻게 부인을 잃었는지, 어떻게 폐공장 안에서 생존을 이어왔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리건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자를 찾아 나서는지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소리로 인간을 사냥하는 크리처가 모종의 이유로 나타났고, 생존하기 위해 인류는 고군분투한다.
이것이 영화 설정의 끝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보면 드래곤이 고대에 어떤 존재였는지, 어떤 악마가 나타나 싸우다가 드래곤이 유물을 남겼고, 그리고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싸우는 상황, 드래곤의 유물을 지키는 부족 등등 세계관이 복잡합니다.
드래곤의 의미란 어떤것이고 각각 부족이 살아가는 환경과 특징들은 어떤것인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숙지해야 할 정보양이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영화 <마녀>는 아예 영화의 일부분을 설명을 목적으로 할애하여 강의시간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결국 장르영화란 멍때리고 봐도 관객을 알아서 춤판으로 끌어당겨 덩실덩실 춤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복잡한 설정들은 '이미 일어나버려서 대응하고 있는 것, 그래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차치해버리고, 크리처에 대항하는 생존컨텐츠로 영화를 채운 구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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