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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리뷰 - 전설이 될 모험, 꿈같이 황홀하고 관능적이다

by 리름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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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 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이 영화를 느끼는 그대로 리뷰하기 위해선 진지한 이야기를 할수밖에 없겠습니다.

잡설은 차치하고 최대한 비약해서 요점만 말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어떤 '존재'는, '외부의 존재와 어떻게 관계하는가'로 그 가치가 결정이됩니다.

즉 만화 <원피스>에서 타인에게 잊혀졌을때 사람이 죽는다는 말은, 영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받는 존재는 그 대상이 '돌'일지라도 아픔을 느낀다는 이외수 작가의 말(<1박2일> 시즌1 방영본)처럼, 나와 관계하는 대상이 무생물이어도 그것은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대상이 존재하려면 관계를 맺어야하고, 관계가 맺어지면 대상간에 '스토리'가 발생합니다.

즉 한 사람의 삶에 쌓여온 이야기로서, 그 사람이 어떻게 존재했는가가 말해지는 겁니다.

'명예로운 존재'가 되려면 '명예로운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왕의 조카인 가웨인은 스스로의 무용담을 만들어내기위해 녹색기사의 게임에 응합니다.

그리고 녹색기사의 머리를 자른 가웨인은 대중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죠.

이야기를 만든다는것은 현실을 마주하여 운명을 개척해간다는 것입니다.

운명은 믿는 사람에게 의미있는것이고, 다시 의미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가위해 가웨인은 1년후 녹색기사를 찾아 떠납니다.

가웨인은 명예로운 존재가 되는 과정은 사실 어머니의 계략입니다.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싶은 어머니가, 유약하여 향락이나 즐기는 아들을 철들게 만들려는 심산이죠.

사실 그런부분에서 운명이란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기보다, 작위적으로 만들어졌고 그것에 주인공이 어거지로 순응하게되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앞서말했든 운명이란 믿는자에게 의미있는 것이므로, 자신의 운명임을 받아들이는 가웨인에겐 이 여정이 필연적인 의미가 있는것입니다.

가웨인은 유곽의 여인과 놀아나고, 기사로서 내세울만한 무용담이 없는 어린 청년입니다.

젊음의 가치는 가능성에 있습니다.

현실을 마주하고 운명을 받아들인다는것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상당부분 포기하는 책임입니다.

동화 <피터팬>의 피터팬은 시간에 쫓기는(시계를 먹어버린 악어) 후크선장을 보고,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소년입니다.

결국 어른이 되는것을 포기하고 아이들을위한 환상의섬 네버랜드의 왕이됩니다.

즉 피터팬은 어른이 되기위한 책임을 회피합니다.

이것은 리얼리즘 영화이기보다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영화로서 생물학적인 죽음보다 영적인 죽음에 그 의미가 닿아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린 가웨인이 기사로서 재탄생하는 성장스토리입니다.

즉 새로운 정체성의 존재로 재탄생하려면 한번은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젊음에 대한 사랑을 버리는것은 죽음처럼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 죽음과 대면하기를 끊임없이 유예하도록 만드는 것은, 환상에 안주하는 '안락함'이며 영화속에는 녹색허리띠가 그 상징입니다.

하지만 젊은 영혼에 대한 사랑은 반드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것을 깨달은 가웨인은 미래에서 죽음을 맞닥뜨립니다.

몇번이고 죽음을 유예시키던 가웨인은 녹색기사 앞에서 녹색 허리띠를 풀어놓습니다.

녹색기사는 가웨인의 정직함을 칭찬하지만 여전히 가웨인의 목을 자를것이라 말합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결말이 특히 놀랍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예술영화들은 관객이 자신들의 삶을 매우 강하게 투영하여야 그 가치를 느낄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공간은 늘 변화하기에 나를 낮추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하여도, 새로운 갈등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즉 가웨인이 자신이 죽을 운명을 일시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여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무한의 프렉탈처럼 반복될것이라는 겁니다.

그 공포앞에 우리는 다시금 무서워하다가 머리를 조아릴수밖에 없는 비참함의 반복인 셈이죠.

그리고 그 비참함을 인내하며 사는것이 진정한 '명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외적인 부분을 보자면 사실 지루함이 많았습니다.

무용담이라기보다 주인공의 찌질한 모습이 드러나는 상황들이 나열됩니다.

그럼에도 가웨인은 녹색기사앞에 당도하였다는것이 중요한것이고, 사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부끄러운 여정들을 견뎌낸 인내가 훌륭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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