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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소설관련 잡담

[고찰글] 작품성에 대한 논의는 항상 창작계에선 나올 수 밖에 없는 내용임

by 리름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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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기생충의 스포가 있음. 주의하길.

이건 뭐 창작계에선 항상 나올 수밖에 없는 얘기고, 어떻게 보면 웹소설 시장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창작계에서 항상 새로운 장르, 또는 새로운 분류가 튀어나올 경우 사람들은 그걸 분류하고 싶어하고, 자신이 느낀 재미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는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자신이 느낀 감정을 남과 공유하고 싶어하는 감정이고,

 

또 하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기 때문에 자신이 느낀 재미에 대해 정의하고 싶어함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핫한 힙합에 대해 얘기해본다고 칩시다.

여러분들은 힙합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거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많을겁니다.

'힙합이 무슨 예술이냐. 그냥 말장난에 불과한거지.' 같은 의견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면 힙합 또한 예술이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주 오랜 논쟁거리입니다.

우리 선조님들도 이미 경험했던 일이고.

저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김삿갓'을 들고 오고 싶습니다.

김삿갓은 당대에 그냥 '말 잘하는 괴짜' 정도였습니다.

그의 말장난이 어느 정도인지 한 번 예시를 들고 와보겠습니다.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내 일찍이 서당인 줄은 알았지만

방안에는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10명도 못되고

선생은 와서 인사조차 않는구나.

이렇게 한자 뜻풀이만 해보면 그저 그런 신세한탄 정도로 보이지만 저 한자들의 음만 따서 읽어보면

서당내조지요,

방중개존물이라.

생도제미십이고.

선생내불알이라.

갑자기 엄청난 욕설이 되어버립니다.

뭔가 힙합이랑 되게 비슷하지 않나요?

현대에 와서 김삿갓은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시인이 되었고, 그가 남긴 글들은 '고전 시가'가 되어 '예술'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깐 저의 답은 이렇네요.

'힙합 또한 예술이 될 수 있다'

시대가 흐르면 힙합이 우리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도 있고, 당대에는 이런 문화를 즐겼다 식의 사료가 될 수도 있는거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재미의 기준'에 대해서 정립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이 쪽으로 그나마 가장 확실한 영화계를 들고 오겠습니다.(내가 영화를 되게 좋아하기도 함)

영화는 이런 기준이 되게 잘 정리되어있는 편입니다.

'배우의 페이소스가 훌륭하다'

 

'감독이 자신의 페르소나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했다'

 

'이 작품의 미장센은 환상적이다'

등등.

예시로 기생충을 들고 와볼게요.

기생충의 카메라, 촬영기법. 미장센은 정말 극찬할만한 수준이며 동시에 대중들에게 참으로 쉽게 전달해주는 좋은 미장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작품에서 감독이 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아마 '현대의 신분제'에 가깝다고 저는 추측합니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걸 미장센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알게 모르게 심어줍니다.

예를 들어 송강호네 가족이 이선균 가족의 집을 갈 때는 계속하여 올라갑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계단을 오르고.

참으로 이해하기 쉬운 미장센이고 상승의 연출이죠.

근데 반대로 송강호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나 비밀을 들키는 부분은 노골적일 정도입니다.

비 오는 날, 이선균의 가족에게 들킬지도 모르는 상황에 송강호네 가족은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데 그 길이 한참 동안 계단을 내려갑니다.

송강호가 지하실의 그 녀석에게 들키는 순간, 송강호네 가족은 지하실 계단을 굴러내려가면서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자, 이런 것들을 보고 사람들은 '미장센이 좋았다'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저런것들을 보고 사람들은 '작품성이 좋았다'라고 얘기하는 거고요.

근데 이거 누가 정한건가요?

[관객]이 정했습니다.

평론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예술적 가치'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관객들의 '대중적 가치'가 있습니다.

대중적 가치는 또 다른 기준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극한직업'을 예시로 들고와볼까요?

극한 직업이 작품성이 있는 작품이냐고 그러면 사람들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 거릴거입니다.

'쓰읍... 예술 영화는 아니지 않나?'

그렇죠.

왜냐하면 감독이 애초에 '상업영화를 목표로'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극한직업의 경우 기생충과는 조금 다른 기준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액션이 좋았다'

 

'개그가 좋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여기서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는 이전의 기생충의 연기와는 조금 다를 겁니다.

'배우들의 (개그) 연기가 좋았다' 라거나

'배우들의 (액션) 연기가 좋았다' 식이겠죠.

기생충의 경우에는 대중적으로도 흥행이 좋았으니깐 좀 더 예술 영화에 가까우면서도 그나마 대중에 가까운 '조커'를 들고와볼까요?

영화 조커 또한 되게 알기 쉬운 미장센입니다.

자기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 베개로 질식사시키는 되게 잔혹한 패륜의 현장에서 아서는 창문에서 내려오는 햇빛을 맞고 있는 성스러운 광경이 연출되는가 하면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피 묻은 발걸음으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 등은 '아서의 행복이 일반인의 기준과 매우 다름'을 알리는 미장센이기도 합니다.

또, 아서가 자신의 집(자기를 힘들게 하는 어머니, 괴로운 가정환경)으로 돌아가는 동안엔 어깨가 축 처진 상태로 힘겹게 계단을 오르지만, 나중에 아서가 조커로 각성하여 직장 동료를 살해하고 계단을 내려오는 길은 기뻐하며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내려오죠.

되게 이해하기 쉬운 미장센 아닌가요?

 

'일반인의 기준(아서와 다른 기준), 도덕적 기준에 맞춰 살긴 참으로 힘들고(힘겹게 계단을 오름)'

 

'아서의 기준(일반인과 다른 기준), 도덕적 기준에서 해방된 삶은 아서에게 기뻤음(춤추며 계단을 내려옴)'

또 계단을 내려오는 건 '타락'의 의미도 되기도 합니다.

자, 근데 이거 누가 정한거죠?

'내가, 관객이 정했음'

만약 여러분들이 제 해석을 듣고 '그럴싸하다' 느끼면 이건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될 겁니다.

만약 내 생각에 동의를 못 하고, 자기만의 다른 해석이 있다면 '그것 또한 작품의 가치'입니다.

자, 그럼 웹소설로 가보겠습니다.

우리는 디다트를 보고 보통 '상업작가의 정점'이라고 표현하고, 디다트와 정반대의 작가를 골라보라고 하면 '이영도, 퉁구스카' 등의 작가를 뽑을 수 있을겁니다.

왜?

우리는 해당 작가들에게 원하는 '재미'가 다르거든요.

디다트의 작품은 원초적인 재미들에 되게 충실합니다.

복수, 성장, 갑질!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단어들이죠.

근데 이영도나 퉁구스카 작가들은 전혀 다른 매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뭔가 가슴에 남더라', '이야기가 되게 기억에 남았음', '명언들이 많더라' 등등...

이거 근데 누가 정하는거죠?

'독자'가 정하는겁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디다트'의 작품에서 뭔가 되게 강렬한 것을 느꼈다?

그건 디다트만이 가진 '작품성'이 될 수도 있을겁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목마'의 작품에서 뭔가 되게 강렬한 것을 느꼈다?

그럼 여러분은 '목마 작가는 작품성 있는 작품을 쓰더라'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근데 웹소는 아직 그 기준이 명확해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니깐 이런 토론이 오고가는겁니다.

그리고 이런 토론이 그 기준을 마련하는 계기고요.

여러분들이 만약 자기만의 무언가를 느꼈고, 그에 대해서 자기만의 논리를 만들어서 그걸 주장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작품이든, 심지어 별 내용 없는 '내가 오늘 지나가다가 싸움을 했다' 같은 얘기에도 '작품성을 부여할 수 있음'.

그리고 그건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데 또 하나의 거름이 될 거고, 언젠가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여러분들이 '잘못된 것'도 아님. 그냥 '다름'인 거죠.

다름이랑 잘못된 건 다른거고 이거 제발 구분했으면 좋겠네요.

그러니깐 '맞고 틀림'을 가지고 싸우지 말고 '다름'을 가지고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요약]

 

작품성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정하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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