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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현판

[리리뷰 630번째] 회귀도 13번이면 지랄 맞다

by 리름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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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현대판타지
작가 : 사자혼
화수 : 334화


책 소개글

마왕의 머리를 6번 박살냈다.

하지만 회귀가 끝나지 않는다.

지겹군. 지겨워.

날 언제까지 싸우게 할 거지?

좋아, 던전 안의 모든 걸 죽여버려도, 어디 세상이 멸망하는지 한 번 해보자고.


리뷰

인간의 역사는 폭력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먹이를 구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강한 힘의 추구로부터 시작된 폭력의 역사.

생존을 위해 발전해온 힘의 추구와 수많은 기술들, 팽창과 진보를 반복하며 어느덧 인간의 역사는 지구 위 만물들의 꼭대기에 올라선 영장으로 거듭나게 되었지요.

그러나 자연을 모두 지배한 인간의 정복욕은 그칠 줄 모른 채 같은 인간을 향해 발산되었고, 최초의 문명 이래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생존, 정복, 탐사, 또는 교화를 구실로 강자들에 의한 수많은 파괴와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 사람은 당장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자아와 개성을 자각하는 일은 너무 요원했고, 중세 시대에 개인은 계급적으로는 봉건 지주의 농노이며 종교적으로는 유럽 사회를 지배한 가톨릭 신의 피조물 이상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운동이 부흥하고 세계의 주체가 신이 아닌 인간으로 전환되면서 비로소 개인은 발견되고 자각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오롯한 하나의 개인으로 존재하게 된 근대 이후에는 '나 자신이 무엇인가'에 해당되는 철학도 등장하기 시작했지요.

소설로 대표되는 문학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극한 상황'에 해당되는 배경을 가진 작품들은 문명의 이기에 빠진 현대인에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경험치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 그리고 인간성에 집중하게 되는 법입니다.​

사람들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그곳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아내려 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번에 소개드릴 작품도 그런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2018년, 지구에는 갑자기 몬스터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헌터들도 생겨났지요.

하지만 몬스터를 아무리 죽여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찾기 위해 마지막 던전 '바벨의 탑'에 입장하여 마왕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만약 20년 안에 마왕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모든 몬스터들이 던전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바벨의 탑 안에 절망만이 있지는 않습니다.

헌터들은 바벨에서 무한히 강해질 수 있습니다.

천사들도 있고,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스탠드처럼 헌터들을 보조해주는 '아바타'도 있습니다.

굶고, 고립되며, 공포에 떨고 어둠 속에 갇힐지언정 희망의 빛은 꺼지지 않습니다.

네, '꺼지지는' 않지요.

그저 꺼지지 않을 뿐인 빛의 이야기.

'회귀도 13번이면 지랄 맞다'는 그런 상황에서 시험받고 고뇌하며 마모될 대로 마모된 영혼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공혁은 회귀자입니다.

그리고 작중 시점은 13번째로 회귀한 시점입니다.

첫 번째 회귀.

공혁은 회귀한 지식을 이용해 바벨에서 헌터들을 구원하지만, 신인류인 '헌터'와 구인류인 '인간'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두 번째 회귀.

모든 인간의 정신을 융합시켜 천국을 만들려 한 '헌터'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세 번째 회귀.

살육과 생존의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수감된 '헌터'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네 번째 회귀.

암살자들에게 벗어나기 위해, 아바타의 능력을 폭발시킨 '헌터'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다섯 번째 회귀.

8살의 나이로 바벨에 떨어졌던 소년은, 돌아온 세계에서 모두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여섯 번째 회귀.

아직 갓난 손자를 지키려고 힘쓴 늙은 '헌터'가 있었습니다.

그녀로 인해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맞습니다. 주인공 주공혁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류가 멸망하면 회귀한다'라는 성질을 가진 회귀자입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오며 인류를 멸망시킨 원인은 마왕도 몬스터도 아닌 '헌터'이지요.

결국 주인공은 이번 회차에서 마왕도 몬스터도 헌터도 모두 죽여버리기로 결론을 내립니다.

주인공은 작품 시작과 동시에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것들을 가차 없이 죽여가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그 누구도 주인공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작품 중반부에서 모든 헌터들이 힘을 모아 그를 잠시나마 제압하려 하지만, 결국은 그가 가는 길의 방해물이 될 뿐입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주공혁'이 자신의 안식과, 인류의 존속을 위해 걸어가는 행보를 서술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등장인물은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그들의 역할은 철저하게 '주인공을 필사적으로 막는 것'에 국한되지요.

그러한 주제적 측면에서 핵심이 되는 주공혁이 다른 작품의 인격파탄자 주인공들과 다른 점은 그가 자신의 이 '과업'을 어떠한 우월의식이나 즐거움이 동반된 것이 아닌, 철저하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의무'라는 사명감을 갖고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작품은 이러한 인류애 넘치는 사이코가 자신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사악한 악당의 끔찍한 계획'이 아닌 고뇌와 안식의 추구를 통해 나아가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행하는 성전'인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주인공은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을 죽입니다.

주인공에게 관용은 사치입니다.

몇 백명의 희생으로 몇천 몇만명의 생명을 구하는 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주인공은 장차 인류의 구원자로 불리며, 등을 맞댄 동료를 죽입니다.

6회차 회귀에서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숨겼고, 그로 인해 아이의 폭주한 능력이 인류를 멸망시켰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을 돌봐준 어머니이자, 스승인 고아원의 원장을 죽입니다.

1회차 회귀에서 그녀의 능력이 구인류를 모두 멸망시켰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의 연인을 죽입니다.

3회차 회귀에서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폭주시켜, 인류를 멸망시켰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데 급급하고, 주인공의 능력은 너무나도 막강하지요.

그동안 주인공은 자신이 이 과업을 행하기로 다짐했던 과거의 원인과 후회를 곱씹으며 다시는 전 회차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굳건히 세웁니다.

그러나 그런 반복되던 삶에 변수가 생겨납니다.

'긁어모인 자'로 칭해지는 수수께끼의 인물들이 주인공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도 주인공에게 '후회할 일은 하지 말라'라며 충고하기 시작하지요.

자신들이 미래에서 왔다고 말하는 '긁어모인 자'들은 주인공이 만들어낸 'X'라는 주인공의 또 다른 신분에게 접근합니다.

미래에서 라플라스의 악마, 사령왕으로 칭해지는 'X'가 주공혁에게서 인류를 구해줄 것이라 설명하며 말이죠.

주인공은 속으로 코웃음 칩니다.

주공혁과 'X' 둘 다 자신인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지.

미래에서 과거로 오는 도중 기억이 어딘가 변질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말입니다.

가면을 벗고, 주공혁이 바로 자신임을 알려주기도 하지요.

그것을 알게 된 한 미래인은 분개합니다.

기만하지 말라고.

주공혁이 'X'일 리가 없다고 말입니다.

주인공은 그 말에 미래인들이 다른 인물과 자신을 착각한 것 같다고 생각하지요.

그들이 적대하는 주공혁이 'X'인 것을 모르는 것을 이점으로 삼아 주인공은 미래인들을 하나씩 제거해 갑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과거로 도착한 '긁어모인 자'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며 주인공이 대처할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주인공은 조급해졌습니다.

이미 반복되는 삶에 지쳐 생기를 잃었습니다.

다시 회귀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만 삐끗하면 이성을 잃고 미쳐버릴 것임을 주인공은 직감하지요.

그렇다고 방향을 바꿔 어떻게든 헌터와 인류 모두를 살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해 주인공은 무엇이든 했습니다.

동료의 목을 베었으며, 전생에 함께했던 연인의 등을 찔렀고, 과거 가장 믿을 수 있었던 친구를 끔찍하게 속였지요.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계속 '후회하지 말라'라고 말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에 행한 일에 대해 의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이 행한 일은 옳았다고 곱씹으며 말입니다.

그는 결국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자신을 키워주었던 어머니의 심장에 말뚝을 박았습니다.

가슴에 깊이 찔러 넣으며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속 무언가가 완전히 죽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켜야 할 것을 잃었고, 지키고 싶은 것도 잃었지요.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주변은 혼란에 빠지고, 주인공은 탈출하려 합니다.

그 순간 주인공의 연인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진화한 능력을 이용해, 주인공의 어머니를 부활시키지요. (이 부분은 중대한 스포라 직접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주인공은 13번의 삶 중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경악하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다시 달려듭니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본색을 드러낸 주인공을 가로막습니다.

어디 숨어있었던 것인지 모르던 미래인들도 가세합니다.

그리고 작중 처음으로 주인공은 위기를 맞습니다.

아바타 '태양신 라 제후티'의 능력으로 거대화해 싸우지만, 수많은 전대물에서 거대화는 패배를 확실시하는 전개임이 입증되었음을 주인공은 다시금 증명합니다.

주인공은 분명 강했습니다.

하지만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었지요.

결국 주인공은 현대 지구로 도망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런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정처 없이 떠돌며 헌터들을 다 죽일 계획을 짜던 중, 주인공은 '정체불명의 목소리'의 주인을 만나게 됩니다.

잘 아는 얼굴이지만 주인공 자신의 눈으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

그것은 '미래'의 주공혁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사실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은 헌터들을 다 죽이고 말 거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거기에는 반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나운 긍정이 담겨 있었지요.

그 말에 목소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헌터들과, 인류, 둘 모두 문제없이 존속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입니다.

(이 부분은 이때까지 작가가 깔아왔던 복선의 총집합이기에 제가 설명하기는 너무 아깝네요. 직접 보세요!)

주인공은 그 사실을 깨닫고 처절하게 절망합니다.

부들부들 떨며,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주인공은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했습니다.

동료를 버리고, 친구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자기 자신조차 버렸습니다.

반복되는 회귀에서, 인류를 구원해달라는 동료들의 유지를 홀로 짊어진 그에게는 자비도 관용도 모두 사치였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 사람들의 수가 얼마인가요?

이제 와서 관용을 베풀고 예외를 둔다는 것은 죽어간 자들에 대한 모욕이었지요.​​

그들의 죽음을 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드는 모욕 말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죄 없는 헌터들을 죽여서라도 인류를 구원하리라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지켜왔던 것을 버리자마자 현실은 냉혹하게도 그에게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던져주었지요.

그리고 그 대가로 현실은 주인공에게서 지키고 싶은 것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목소리는 주인공의 행동이 아무 가치없는 행동이었다고 가르쳐준 셈입니다.

만약 그 사실을 보다 빨리 알았더라면 주인공은 그저 그 방법대로 행하기만 했으면 되었을 것입니다.

무수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일 필요도, 동료를 배신할 필요도, 연인을 벨 필요도, 가족을 찌를 필요도 없었지요.

그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냉정하게 행동하기만 해도 되었을 것을.

주인공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정신이상자의 발광에 죽어간 사람들의 핏자국뿐이었지요.

주인공은 그제야 목소리가 말했던 '후회할 일은 하지 말라'라는 것이 어떤 뜻인지 처절하게 이해합니다.

주인공은 죽고 싶어 합니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지요.

자신이 죽어서, 그리고 아무도 죽을 필요 없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옳은 일일까요?

주인공은, 자신이 죽음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진정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모른 척하고 평범하게 살 수는 없었지요. 그러기엔 자신은 이미 너무나도 흉측해져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한번 더 회귀함으로써 자신이 저지른 짓을 외면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주인공은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결정합니다.

미래인들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말했던 'X'가 되기로.

자신이 행한 죄를 직시하며, 마모되고 망가진 남자의 모습 그 자체로, 일필휘지로 삶을 끝내기로 말입니다.

이렇듯 이 작품은 헌터물의 요소가 약간 가미된 주인공의 일대기입니다.

이러한 작품의 단점은 주인공의 강력함을 강조하기 위해 보잘것없게 묘사된 다른 인물들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보편적이지요.

하지만 회귀 13 지랄은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 전개'를 이용해 이를 보완합니다.

"너는, 무엇이지? 왜 나를 이토록 막는 것이냐."

"이 도시 들어오면서. 뭐 그리운 거 느껴지지 않았어?"

"그리운 것?"

조금, 그러한 것을 느낀 사령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사신 우르벤의 사념이 지배하는 리치였다.

리치 본인의 의식은 지워졌고, 우르벤의 기억조차 희미한 상태.

그럼에도 주공혁에겐 무언가 느껴지는 게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분이라던가."

[아바타 라 제후티(SS) 현신!]

"태양? 신?"

번개에 맞은 듯.

무언가 떠오른 사령왕이 몸을 떨었다.

"전능, 하신."

라아아 ㅡ 제에 ㅡ 후티이이이 ㅡㅡ!

어설프게 소리를 빌리는 것이 아닌.

강렬한 사념파가 주공혁을 덮쳤다.

"그래. 이래야지."

과거, 끝없이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던 남자가 있었다.

지옥 같은 세상 속에 부족을 잃고, 친우를 잃고, 가족을 잃고, 자기 자신조차 잃은 그 남자가.

오직 저주만이 남아.

그토록 찾아 헤멨던 신 앞에 섰다.

라 ㅡ 제후티여 ㅡ 제발 저희를!

제발 저희를 구원해주소서!

저희 부족을 죽은 자 가운데 버리지 말아 주시옵고 ㅡ

제 친우와 어린 양들을 사악한 이리들 사이에 방목하지 아니하옵시고 ㅡ

저희를 시험에 들지 말아 주시옵소서 ㅡㅡ

그리고, 그리고 ㅡㅡ

내 가 ㅡㅡ 족 돌 려 줘 ㅡㅡㅡ!!

작중 제일 소름 돋았던 사령왕전.

그 외에도 사천왕 클루에스티전 등등 작중 나온 전투씬들은 대부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어쨌든 그다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조명하지 않는 분위기다 보니 이런 전개가 나쁘진 않습니다.

사이다도 있고 고구마도 있고 주제의식도 괜찮고 약간의 주인공의 편의주의적 요소도 있고 문체도 나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잘 읽히는 글이지요.

하지만 이런 분명하고 호소력 있는 줄거리에 비해서 구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약간의 문제점들이 존재합니다.

첫번째는 가끔씩 나오는 감정선 과잉.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봤는데 위에 서술한 사령왕전의 마무리나 주인공 연인의 성향 등 캐릭터성이 붕괴할 정도로 전개가 급격히 전환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작중 이야기 전개상 중요하거나 분위기를 잡아야 할 장면 직전에서 갑자기 휙 하고 바뀌어 버리는데...

이게 굉장히 거슬리는 요소로 느껴졌습니다.

둘째는 주인공인 공혁의 변화에 대한 당위성.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주인공의 감정 묘사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살펴보았지만, 주공혁이 자신이 죽인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 각별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줄 만한 장치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서 비추는 주인공의 심리는 피폐해진 내면에서 비롯된 광기와 죽음에 대한 갈망뿐이었습니다.

가끔씩 과거 회상이 나오기는 하지만, 중반부쯤 가서야 찔끔찔끔 나오는 거라서 '그냥 그런 일도 있었지'정도의 인상을 받았고요.

중후반부에서는 헌터와 인류 모두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실마리를 잡고 주인공도 괴로움 끝에 마음을 바로잡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주인공의 변화를 위한 장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렸지만 실제로 공혁 본인에게 큰 감정적 동요로 다가올 만한 부분은 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복되는 삶에 지칠 대로 지친 그가 후반부에서 헌터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금 마음을 잡을 정도의 감정적 변화를 느꼈는지.

과연 그들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자신의 과오를 직시하고 회귀를 거부했던 것인지.

그것이 저에게는 조금 부족하게 다가왔습니다.

회귀에 대한 광기를 품은 줄거리는 진짜 엄청난 수준이라 할 수 있지만...

시나리오적 측면에서 이러한 감정적 변화를 납득시킬만한 충분한 장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런 회귀에 대한 피폐해진 주인공의 심리를 담은 작품은...

정말 제가 봤던 피폐물 중에서는 상위에 속한 작품입니다.

한번쯤 보시는걸 추천드리고 싶네요.

그런데 솔직히 제가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그냥 눈 딱 감고 회귀할 것 같습니다.

괴로우니까요.

그런 점에서 절망에 빠져 있던 주인공이 다시 일어나는 장면은 정말 가슴 깊이 느껴질 그러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도덕적 개념들이 허무하게 무력해지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인간에 대해서 말입니다.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타인과의 갈등이 없는 그러한 평화 속의 세계...

박살 나고 죽이는 싸움은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이야기일 때 즐겁고 쾌감이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러한 일들은 오로지 창작물... 이야기 속에서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각자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평화로운 삶 속에서 이러한 가상 매체들로 비현실의 쾌감을 느끼면서...

집에서 강아지의 푹신한 빵댕이를 만지는 삶을 누릴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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