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백영 정병욱 선생.
한국 국문학 연구의 시초를 닦은 분입니다.
나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아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분의 고전 시가 해석을 배웠을 터.
참고로 한국 문학사상 가장 성공한 덕후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이 분이 바로 <서시>, <별 헤는 밤> 등으로 유명한 윤동주 시인의 친구였기 때문.
정병욱의 회고에 따르면 윤동주와 정병욱의 첫만남은 이랬다고 합니다.
정병욱은 1922년 출생으로, 1940년에 연희 전문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입학하자마자 윤동주가 "아직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은" 신문을 들고 먼저 찾아왔다고 합니다.
...... 1940년 4월 어느 날 이른 아침, 연전 기숙사 3층.
내가 묵고 있는 다락방에 동주 형이 나를 찾아주었다.
아직도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은 조선일보 한 장을 손에 쥐고,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와 같이 산보라도 나가실까요?"
신입생인 나를 3학년인 동주 형이 그 날 아침 조선일보 학생란에 실린 나의 하치도 않은 글을 먼저 보고 이렇게 찾아준 것이었다.
중학교 때에 이미 그의 글을 읽고 먼발치에서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도 뜻밖의 영광이었다.
나는 자랑스레 그를 따라 나섰다.
이미 그때 당시에 윤동주의 몇몇 자작시가 신문에 실려 있어서, 정병욱이 그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알려져있었다는 이야기.
정병욱 또한 문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윤동주와 그는 5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사이가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일화가 있는데, 윤동주가 별 헤는 밤의 초고를 완성하고 그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병욱은 이를 본 뒤, "어쩐지 끝이 좀 허한 느낌이 드네요." 라고 말했고, 윤동주가 별 헤는 밤 마지막 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끼워넣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그리고 윤동주는 생전에 자신의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육필 원고를 3부 갖고 있었는데, 한 부를 정병욱에게 주면서 "정병욱 형 앞에 윤동주 정"이라고 썼습니다.
나이가 5살 어린 후배를 형이라 부르는 것도 놀랍지만, 원고를 "정"(드리다)한다는 말에서 보이듯이 윤동주는 그를 단순한 친구나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병욱은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받은 뒤, 일본 육군에 학병으로 징집당하는데, 그때 원고를 어머니에게 맡기며 "내 목숨보다 소중하니 잘 보관해 달라" 며 신신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윤동주의 시가 실전되지 않고 전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
출처: <우애와 기억의 공간, 윤동주와 정병욱>, 김응교
이런 이야기를 소설 알려주는 학교 공부시간에 알려줘야 재밌었을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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