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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판타지

[리리뷰 628번째] 오파츠 - 수천 년은 이른 물건

by 리름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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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판타지
작가 : 아낙필
화수 : 250화

 


책 소개글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저는요. 가진 것도 없는 평민이고, 재능도 별거 없어서 가까스로 들어간 아카데미에서는 버리는 패 취급 받고, 그렇게 구차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귀염둥이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어우, 그야말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이 행성의 문명이 받아들이기에 아직 삼천 년은 이른 물건!


리뷰

오파츠를 보고 있습니다.

요사이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피곤한 나머지 대리만족을 하기 위한 작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런 장르는 갑질물, 회귀물, 헌터물, 기업물 등등 레드오션 그 자체인 시장이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어느날 갑자기 평범한 나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이라는 주제는 오랜 시간 찐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진부하지만 효과적인 정신승리물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대중 매체에서는 초능력으로 더럽고 음침한 짓을 하는 소수 찐따들의 역겨운 욕망을 충족시키기보다는 권선징악이라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지닌 영웅물을 통해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그려내는 것이 주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평범한 청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초능력을 얻었다'라는 소재의 이 작품은 여러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잠재되어 있었기에 충분히 기대할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대충 보편적인 스토리라인만 따라가도 중박은 칠 수 있는 소재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작품은 필튼 아카데미의 열등생이었던 제임스가 외계의 AI를 얻게 되어 일어나게 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이 갖는 분위기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주인공이 가진 이 알 수 없는 초능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영웅 서사적인 부분과, 두 번째는 초능력을 얻었다 한들 기본적으로 소시민인 주인공의 태생적 한계로 인한 현실의 벽을 다루는 부분.

그리고 어느 쪽이든 개인차가 있지만 대개 이런 식의 시나리오 전개를 보여줍니다.

평범한 주인공이 어느날 갑자기 엄청난 힘을 얻고, 그 힘에 취해서 좋은 짓이든 나쁜 짓이든 일단 별 생각 안하고 신나게 저지르다가, 어떠한 전환점이 될 만한 큰 사건을 겪고 거기서부터 진지하게 자신의 힘을 사용할 곳을 고민하게 된다... 대부분 이렇죠.

근데 문제는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작품은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부분에서부터 슬슬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

주인공은 평민입니다.

그리고 작품의 세계관은 전형적인 중세판타지이지요.

중세시대에 평민은 계급적으로는 봉건 지주의 농노이며 종교적으로는 유럽 사회를 지배한 가톨릭 신의 피조물 이상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주인공이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며, 작중에서도 주인공 개인의 학업 성취가 높지 않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주인공이 갑자기 만능 AI 비서를 얻었다?​

아이의 손에 들린 과도처럼 위태로운 상황이지요.

결국 '코어'로 일컬어지는 AI를 회수하기 위해 정체불명의 단체가 주인공에게 접촉해 옵니다.

평민 출신의 열등생인 주인공과 평생을 세 치 혀로 먹고 산 악의 조직원이 만났습니다.

명분이든 논리든 결과는 자명했지요.

제삼자인 제가 보기에도 교섭인의 대응은 완벽했습니다.​​

주인공이 코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지고 있던 심리적인 불안을 파고들었으며, 자신들의 목적에 대해서도 확실히 피력했지요.

코어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대해서 말입니다.

코어만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굶지 않고 살 수 있으며, 몇십년 후에는 자연사나 병사는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될 것이라 했던가요?

무서운 논리지요.

제가 저런 상황에 빠졌다면 조금 의심은 할지언정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성숙했습니다.

정체불명의 단체가 내세우는 이상을 손쉽게 논파하고, 주인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교섭인의 장딴지에 칼침을 놓아버립니다.​

그 단체도 어이가 없었을 겁니다.

분명 그들이 파악하기로 주인공은 인생에 대해 '엿같음'이나 '지겨움'이상의 감상을 느끼지 못하는 보통의 -그것도 별 볼일 없는 평민- 17세 소년이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주인공은 그런 예상을 손쉽게 깨부수고 자신의 세계 인식에 대한 성숙함을 가감 없이 어필하지요.

주인공이 원래부터 소피스트의 재능이 충분한 친구였는지 어쨌는지는 모릅니다.

작품 내에서 설명을 안해주니까요.

주인공 자체는 완성형 주인공이나 그 내러티브는 말할 수 없이 빈약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지적되었던 단점이지요.

주인공에서 주변 인물로 눈을 돌려보면, 우선 캐릭터 간의 만담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번 작품인 '미궁은 사업이다'에서도 눈에 띄었지만 아낙필 작가 특유의 입담이 살아나는 캐릭터 간 만담은 이번 작품에서도 정말 볼만합니다.​

하지만 분명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도 뭔가 텁텁한 느낌이 계속 제 뇌리를 찔렀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캐릭터 성격이 너무 비슷해요.

대충 비유하자면 주인공과 조연을 합쳐서 열댓 명이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데 그중 여덟아홉 명이 드래곤 라자의 후치인 겁니다.

캐릭터 자체가 대화나 만담으로 어필하는 성격인데 이게 레귤러 등장인물 과반수를 차지하니 글 비중이 대화문에 많이 치중되어 있어요.

자연히 독자는 끝없이 이어지는 만담에 지쳐 버립니다.

맛난 고기라도 계속 똑같은 것만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요.

분명 주인공 이놈이 다니는 학교는 귀족 생도가 재학생 95%를 차지하는 상위권의 사립학교입니다.

그런데 히로인부터 시작해서 주인공의 사부, 친구에 이르기까지 입담이 죄다 전장에서 몇십년 구른 노병처럼 걸걸하니 위화감이 들 수밖에요.

진짜 재미는 있는데... 초반 설명 안 보고 대화문만 보면 이놈들이 다니는 장소가 고매한 잠언을 다루는 지식의 전당인지 낮도적 묘목을 기르는 산적 소굴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게다가 글의 진행에도 개인적으로 불만을 조금 느꼈습니다.

일단 첫 번째로 금사빠 히로인이 두 명입니다.

한 명은 마법계의 떠오르는 신성이며, 또 한 명은 왕가의 사생아지요.

주인공이 오파츠를 얻고 두각을 나타내기까지 몇 주도 안 된 시점에서 이들은 주인공에게 푹 빠져버립니다.​​

한 명은 목숨을 건 혈투에서 등을 맞대고 싸웠고 한 명은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주인공에게 위로받습니다.

이것들은 평범한 이성의 교제와는 거리가 먼 것이며, 타인과의 유대 형성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사건들입니다.

대충 설명하자면 작가들이 단시간에 주인공과 히로인을 엮어주기 위해 사용하는 고전적인 플롯이지요.

근데 뭐랄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고작 한 번 정도로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인가 하면 글쎄요.

연애를 1단계부터 10단계로 구분한다면 그중 2,3단계를 통째로 빼먹은 것과 다름없지요.

게다가 그걸 뺀 나머지는 정말 정석적인 꽁냥 거림과 꽁기 꽁기함이 존재하는 연인의 그것이라 더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의 내러티브 결핍.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봤는데, 위에 적은 문제 외에도 캐릭터성이 글의 전개에 끌려다니는 부분이 계속해서 자잘하게 보였습니다.

작중 이야기 전개상 중요하거나 분위기를 잡아야 할 장면에서 작가가 억지로 글을 '이어 붙였다는' 감상이 확 느껴져 오는데... 이게 굉장히 거슬리는 요소로 느껴졌습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난 대표적인 부분을 꼽자면 주인공이 하렘을 꾸리는 장면을 들 수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주인공의 본처(가칭)의 친구가 주인공에게 남몰래 연정을 품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없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본처가 그걸 어떻게 알고 주인공에게 그 친구를 만나보라고 종용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걸 또 좋다고 넙죽 받아먹고요...

주인공의 본처는 자존심도 강하고 독점욕도 센 커리어우먼의 대표적인 표상입니다.

그런 여자 친구가 '만나보라'라는 말을 그 의미 그대로 말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솔직히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보다 우정이 더 중요한 본처에다 낯짝에 철판 깔고 멀쩡한 연인 사이에 끼어들어간 후처, 그리고 좋다고 시시덕거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양손에 꽃을 쥔 주인공.

아무튼 문제점을 이렇게 막 적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본 작품입니다.

솔직히 요즘 작품 중에 이런 단점 한두개 없는 작품이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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