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성상현 작가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으니 안 읽어보신 분들은 안 읽기를 추천합니다.
***
* 순한맛 정구, 좀 더 유쾌한 정구, 블랙코미디를 뺀 정구. 성상현.
정구 작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인간 불신'입니다.
정구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블랙코미디를 쓰는 작가라 그런지
'인간들은 모두 자기의 안위와 이권을 위해 투쟁하지, 절대 이득 없는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가 기본 전제죠.
성상현 작가 또한 비슷합니다.
결이 약간 다르죠.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다만 두 작가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입니다.
정구 작가는 인간불신을 유쾌하고, 씁쓸한 블랙코미디로 풀어내죠.
신승의 경우, 주인공은 믿었던 인물에게 배신당하고
십장생의 경우, 주인공은 정점의 권좌에 올랐으나 또 다른 권력암투에 빠져들며 마치 영화 '범죄와의 전쟁' 에필로그를 떠올리게 하는 에필로그 속에서 마무리하죠.
맹주사후 또한 주인공은 끝까지 사람들의 욕망에 휩쓸립니다.
그 사람들이 한낱 하급무사이든, 무림 십대고수이든 차이는 없죠.
결과적으로 정구는 항상 다 읽고 나면 '씁쓸함'이 남아요.
하지만 성상현은 그래도 인간을 믿습니다.
낙향무사의 주인공은 결국 낙향에 실패하지만, 자신만의 행복을 얻고, 제대로 된 끝을 맺습니다.
천년무제의 주인공은 자신의 과오를 되돌리는데 성공하죠.
낙오무사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실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봤을 사람에게 용서받고, 이해자를 얻으며 바바리안은 예외적이지만,
망향무사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고향을 얻습니다.
정구 작품의 끝이 '씁쓸함, 또 다른 싸움을 암시' 한다면 적어도 성상영은 주인공에게 최후의, 최후에 구원을 안겨주죠.
결과적으로 정구의 작품은 타락의 플롯이지만, 성상영은 구원의 플롯으로 진행하기에 두 작가의 작품을 다 읽고 느끼는 바가 다른거 같습니다.
* 모순을 사랑하는 작가
성상현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모순, 아이러니함을 참 좋아해요.
보통 문학창작과를 나온 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모순이 작품을 즐겁게 만든다'의 말을 가장 잘 쓰는 작가 중 하나가 아닌가 싶네요.
물론 모순을 다룸에 있어서 정점은 이영도 작가지만, 성상현 작가 또한 고전적인 모순을 상당히 잘 다룹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델포이 신탁'과 같은 운명론적 모순이요.
델포이 신탁을 예시로 들자면
'너의 아들은 언젠가 왕이 될 것이다.'라는 신탁을 왕이 받는 순간, 왕자에게 왕위를 뺏기는게 두려워 왕자를 버리더라도 어떠한 우연이 겹쳐서 왕자가 구원받고, 나이가 들어서, 장군이 된 뒤에, 결국 자신의 친아버지(왕)를 죽이고 스스로 왕좌에 오르죠.
이런 운명론적 모순이 델포이 신탁의 가장 큰 예시인데 이는 성상현 작가도 똑같아요.
낙향무사는 자신이 해오던 과거의 일들이 지긋지긋해서 낙향하지만, 결국 과거의 은원이 자신을 붙잡아서 또 다른 낙향을 겪게 되죠.
천년무제의 주인공은 자신의 사람을 지키고자 분투했지만, 알고 보니 대상이...
낙오무사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세상을 망쳤으며 망향무사는 자신이 잃어버린 고향에 의해 타락할 뻔했으나, 또 다른 망향무사에게 구원받아요.
아... 언제든지 이런 플롯은 너무나 좋죠.
모순이란 항상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니깐요.
괜히 형용모순같은게 존재하는게 아니죠.
'작은 거인'
'소리없는 아우성'
'애증'
과도 같은 단어가 아직까지 쓰이는 것을 보면요.
* 암울하지만, 성상현 작품을 볼 수 있는 원동력. 유쾌함.
보통 암울한 세계관에서는 분위기 조절이 참 중요한데 성상현 작가는 이를 참 잘 조절해요.
세계가 암울하면, 주인공을 유쾌하게 만들어두고,
주인공이 암울하면, 주변인을 유쾌하게 만들어두죠.
이렇게 문장으로 적어두면 참 쉬워 보이지만, 막상 이를 해내는 작가는 많지 않아요.
작품에서 저 분위기 조절 잘못하는 순간 순식간에 평가가 곤두박질치는 예시들도 있으니깐요.
[요약]
- 정구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상현을 추천
- 말빨 있는 주인공을 보고 싶은 분들에게 성상현을 추천
- 무협지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한번쯤은 성상현을 추천
- 암울함을 싫어하는 분들에게 비추천
- 발암캐릭이 단 하나라도 등장하는 분들에게는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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