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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로판

[리리뷰 58번째] 루시아

by 리름 202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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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로맨스판타지, 회귀, 계약, 성인
작가 : 하늘가리기
연재 기간 : 2014. 9. 6 ~ 2015. 4. 5
화수 : 200화

 


책 소개글

자신이 공주인 것을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낸 루시아.

어머니가 죽고 궁에 들어온 날,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엿보는 기묘한 꿈을 꾼다.

팔려가듯 시작한 비참한 결혼 생활, 이어지는 고단한 미래.

그녀는 앞날을 바꾸기 위해 움직인다.

 


리뷰

이번에 리뷰할 소설은 루시아라는 소설입니다.

 

완결된 지 무려 6년이 넘은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로판 명작을 꼽는다면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비교적 오래된 작품임에도 소설 게시판에 심심하면 등장하기에 필자도 한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읽은 뒤 드는 감상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지나치게 고평가 되는 작품은 아닐까?

 

 

우선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무엇일까?

 

소설게에 주로 나오는 호평으로는 1) 매력 있는 여주 2) 로판임에도 수위 높은 정사장면 3)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 묘사 이 정도인 것 같은데,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1) 매력 있는 여주인가

여주 루시아 (비비안)가 매력적인 인물인가에 대해서 전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매력적인 인물은 무엇일까? 개인마다 기준과 평가는 다르겠지만 제 관점에서 매력 있는 인물이라면 자기 주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시대가 어떻건, 운명이 어떻건 본인의 능력으로 한계에 부딪치면서 운명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인물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루시아는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루시아가 보여주는 행동은 딱 그 시대 여성들이 하는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전생의 불행한 삶과 결혼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 백마 탄 왕자님과 계약결혼입니다.

 

이게 어딜 봐서 자기 주도적이겠습니까? 남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계약결혼을 성사시키는 것도 여주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전 좀 회의적이었습니다.

 

애초에 응할 이유도, 이득도 별로 없는 계약을 남주가 받아준 것부터가 클리셰상 억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남주 정도의 권력과 입지를 가진 사람이 관습과 법에 눈치를 본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지만, 그렇다고 굳이 여주와 결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아무 평민이라도 잡아서 인형으로 세워두고 양자 입적하면 남주가 원하는 상황이 간단하게 됩니다.

 

귀찮은 절차, 지참금, 각종 정치적 수고를 안 들이고 가장 편하게 원하는 바를 이루는 방법이니까.

 

그런데 남주는 여주의 말 몇 마디와 흥미에 넘어가 윈윈이라고 포장하는 불공정 거래에 응해주는데, 여기에 여주의 능력이 개입하는 요소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결혼 후에도 보여주는 여주의 모습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고, 특출 난 능력도, 별다른 노력도 안 하는데 여기에 자기 주도적 모습이 어디에 있습니까? 정원 가꾸기, 티파티 개최 등 공작부인이라는 자리에 대한 의무 정도뿐입니다.

 

그나마 주변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데 알아서 한다고 호평하고 있는 거 같은데, 원래 안주인으로서 일반적으로, 그리고 당연히 하는 행위일 뿐이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고, 이렇듯 여주는 회귀라는 특별한 경험을 겪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대의 여성들과 차별화된 점을 조금도 보여주지 못하는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2) 로판임에도 수위 높은 정사장면

이건 호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소설의 정사장면들에 비해 크게 끌리지도(속된 말로 꼴리는지) 않고, 그냥 부부의 성생활을 보여주는 것뿐이었습니다.(격정적이긴 하지만)

 

게다가 전통적인 클리셰인 절륜 미남 + 순진 명기 여주 조합이라 새로운 면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얼굴은 평범하다고 하는데, 몸매는 유년기부터 잘 먹고 자란 것도 아니면서 매력덩어리 그 자체이다.)

 

무엇보다도 굳이 이렇게 비중을 많이 둘 필요가 있는가도 의문인데, 이런 걸 원하고 본다면 그냥 야설을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 묘사

인물의 감정 묘사가 잘 되는 작품은 독자가 그 인물에 공감하고 자신도 그 상황에서 비슷한 감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루시아의 인물들에게 그럴 수 있을까? 전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을 방해하는 요인은 여럿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캐릭터성의 붕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여주의 캐릭터는 무엇이겠습니까? 소설 전반에 걸쳐 나오는 건 토끼처럼 순진하고(정말 순진한지는 모르겠지만), 불행한 유년기와 결혼생활로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입니다.

 

거기에 조금만 상대가 뭐라고 하면 바로 죄송하다는 말부터 나오는 거로 보아 자존감마저 떨어집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납득할만한 캐릭터인데, 이런 삶을 살았는데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었다면 그게 더 신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주의 모습이 초반부터 빠르게 달라집니다.

 

자기 의견도 또렷하게 제시하고, 남주에게 애교도 부리게 됩니다. (이 여자, 분명 사랑 없는 결혼을 원하던 거 아니었나?)

 

거기에 조금씩 보여주는 여주의 능력도 불가사의합니다.

 

결혼 후 공작가에 오자마자 하는 일이 하녀들을 휘어잡는 것었는데(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과는 좀 다르다) 여주에게 이럴 능력이 어디서 솟아난단 말인지 전생에 유년기 땐 자폐 증상을 보였고, 결혼생활은 주눅 들어 살았으며, 결혼 이후엔 하녀로 살았을 뿐이었습니다.

 

하녀 생활을 하면서 배웠다기엔 설득력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가 회사생활 몇 년씩 한다고 회장이 되었을 때 인사관리를 잘하는 게 아닌데 사람을 부리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기초적인 교육도 배웠는지 의문이 드는 여주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유년기~청년기(30대 언저리)를 불행하고 암담하게 살았는데 갑자기 저런 능력이 생긴다? 지나친 주인공 보정의 결과일 뿐이었습니다.

 

또한 공작부인이 되면서 내탕금이 나오는데, 이걸 소비가 아니라 일종의 투자를 할 생각부터 합니다.

 

아무도 이걸 가지고 거창한 걸 하라고 하지 않았고, 그냥 용돈으로 쓰라고 준 건데 말입니다.

 

("일종의 업무추진비가 나왔다. 타당한 성과를 내야...." 실제로 한 대사다.)

 

이렇듯 여주는 의무라면서 뭔가 계속하려고 합니다.

 

애초에 불행한 결혼을 피해 방패로 삼으려고 계약결혼을 한 사람이 말입니다.

 

주변에서 하라고 압박을 준 것도, 해야 할 필요성도 없는데 뭔가 계속하려고 하고, 은퇴 라이프를 즐기려는 용사가 세계 구하려고 뛰어다닌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어색한 모습입니다.

 

 

남주는 한술 더 뜹니다.

 

남주의 캐릭터는 무엇입니까? 소설 전반부에 나오는 남주의 특징이라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나 정작 관심 있는 건 북부에 있는 영지뿐이었습니다.

 

북부 그 자체를 사랑하기에 그 평화를 위해 공작가를 유지하는데, 그마저도 성가셔지니 쓸만한 후계자 하나 만들어 공작위를 넘기려는 인물입니다.

 

가문의 추악한 전통 때문에 자기 혈통은 물론, 유일한 혈육이자 후계자인 조카에게도 정 하나 주지 않고 기숙학교에 처박아둔 냉정한 면모도 있습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변에 상관없이 자기의 뜻대로 밀고 나가는 폭군 기질까지 이랬던 남주가, 여주를 처음 만나는 파티장에서부터 신경을 쓰기 시작합니다.(이때는 흥미였지만)

 

주변에 관심도 없는 오만한 사람이 며칠째 자기를 보고만 있는 여자에게 관심을 준다? 그 파티장에서 그런 사람이 여주 하나도 아니고, 외모도 평범한 여주가 특별히 시선을 끌 요소라고는 며칠째 이어진 파티에 내내 똑같은 옷을 입었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거기에 명목상 아내가 필요할 뿐, 사랑도 마음도 자식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인간이 계약하자마자 여주에게 신경을 써주기 시작합니다. (거처에, 만나는 인물까지 통제하려고 한다)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옆에 세워둘 인형이 필요한데, 그 인형은 사실 누가 와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 인형이 어디에 사는지, 누구랑 만나는지 왜 관심을 갖는단 말인지 평소 주변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도 아니면서 상대 의사와 관계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던 남주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주를 존중하고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타란의 안주인이다. 예를 갖춰라." - 초반에 남주가 실제로 한 대사이다. 몇 번이나 만났다고, 얼마나 감정교류가 있었다고 이런 말을 하게 되는가?)

 

거기에 같은 상황, 같은 사람에게도 말투가 달라집니다.

 

가령 여주와 정사를 하는 중에 어떨 때는 평소 하던 고압적이고 명령어 조로 말하다가, 어떤 때엔 갑자기 현대 20대 남자들이 할법한 말투로 바뀝니다.

 

똑같은 정사장면, 여주에게 더 하자고 하는 장면인데도 말입니다.

 

말투란 인물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모습인데, 이것도 오락가락하며 일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주가 여주에게 빠지게 되는 첫 번째이자 가장 큰 매력인 여주의 몸. 당시 왕국 성문화가 많이 개방적이었다고 하지만 남주가 처녀 한번 못 만나봤을 리도 없고, 여주보다 예쁜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여주의 몸에 빠지는가 천하제일의 명기라? 그렇다면 몸정은 든다고 하더라도 마음까지 주는 건 납득할 수 없습니다.

 

남주의 성격이 그렇게 다정다감하거나 감성이 풍부한 사람도 아니고, 불행한 유년기로 인해 메마른 감성을 가진 남주입니다.

 

어릴 때부터 용병으로 구르면서 수없이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쟁터를 전전했고, 추악한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며, 유일한 혈육에게도 가차 없는 남주가, 상성 좀 맞는 상대가 생겼다고 마음까지 슬슬 넘어가는 건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여주가 이런저런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라? 그런 사람이 여주만 있었을 리도 없습니다.

 

초반에 나왔던 소피아 로랜스만 하더라도 그렇게 해줬을 가능성이 크고,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겐 마음 한편 안 내주던 사람이 여주에게만 마음을 주는 건... 이런 상황이라면 그냥 적당한 섹스파트너 정도로 삼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총평

현재까지 나온 로판의 형식과 클리셰를 총집합시켰다는 점에선 긍정할 수 있지만 단지 그뿐인 소설.

 

신데렐라 컴플랙스 기반의 회귀 + 계약결혼으로 신선하지도 못한 소재를 다룬 흔하디 흔한 로판.

 

워낙 로판계 자체가 클리셰 만땅들이 넘쳐흘러서 그런지 호평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객관적으로 볼 땐 다른 로판과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 작품.

 

바보보다 똑똑하다고 그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도 로판이라는 장르명으로 인해 낮아진 기대치를 간과하고 있던 건 아닐까. 다 읽고 나면 수위 높은 정사장면 정도만 생각날, 로판의 탈을 쓴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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